참사람 에세이 51번째 편지
꿈과 희망을 심어준 은인

글 : 정승권(참사람 독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그해 가을, 나는 인생의 은인을 만났다. 주변을 밝고 긍정적으로 만드는 그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찬란한 순간들도 맞이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과거 사춘기의 방황은 나를 학교 밖으로 이끌었다. 나는 선생님의 만류와 부모님의 걱정도 뿌리친 채 목적 없이 학교를 관뒀다. 그 후 친구 두 명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급한 대로 판자촌에 월세방을 구했다. 창문이나 TV, 냉장고도 없이 휴대용 버너 하나 덩그러니 놓인 그곳이 친구 두 명과 나의 보금자리였다.

부모님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고 살기 위해선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서울에 올라온 즉시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취업을 하려고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고등학교 자퇴라는 꼬리표가 매번 발목을 잡았다.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내 삶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매일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급한 대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이삿짐 나르는 일에서부터 전단지 배포, 음식배달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서너 달 정도 일해서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일을 관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거나 유흥비로 모두 탕진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으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영부영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아무 희망도 없이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한동안 놀고 지내다가 돈이 다 떨어져서 다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때였다. 치킨집 배달아르바이트를 위해 면접을 봤는데, 그 가게 사장님은 그간 봐온 다른 사장님들과는 달랐다. 보통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하면 문제아로 낙인찍어 면접 단계에서부터 선을 긋거나 채용을 한 후에도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은연중에 내비치는 무시가 어린 시선은 가뜩이나 자존감 낮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치킨집 사장님은 선입견을 갖지 않고 나를 보듬고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었다. 
“승권 씨, 나도 과거에 방황하던 때가 있었어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길을 찾으면 돼요. 우리 같이 열심히 해봐요! 승권 씨랑은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아요!”

매사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나는 사장님의 그 한마디가 너무 따스하게 느껴졌다. 치킨집 사장님의 말에 부응하고 싶었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다.
“승권 씨 덕분에 장사도 잘되고, 마음이 든든해! 나도 동생처럼 생각할 테니까 형이라고 생각하고 고민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

사장님은 늘 나를 격려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장님의 칭찬 한마디 한마디가 나 스스로에게 더욱 자신감을 가지는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과거에 안 좋은 일들을 겪으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에 도둑이 들어서 현금을 도난당한 적이 있었는데, 사장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나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나름 잔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히 일한다고 했는데,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려 경찰 조사까지 받았던 것이다. 경찰서에서 혐의가 없다고 입증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장은 끝내 나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딱히 그럴 가치가 없는 상대라는 태도였다. 그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 있었는데, 치킨집 사장님은 무너진 내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원래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일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치킨집 사장님과 계속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쌓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을 다닌 지 1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사장님이 나에게 가방 하나를 건네주었다.
“선물이야! 승권 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가방을 열어보았더니 검정고시와 관련된 각종 참고서와 책들이 한 보따리 들어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를 향해 사장님은 말했다.
“인생 선배로서 조언 하나만 할게. 승권 씨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천천히 준비를 해뒀으면 좋겠어!”

용기가 없었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사장님은 내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공부를 시작해보라며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 웅크린 채 칩거하고 있는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어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지 말라고 토닥여주었다. 결국, 나는 사장님의 오랜 권유와 조언을 받아들여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오면 책상에 앉아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치킨집 사장님은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장님의 말 속에는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검정고시를 통과했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치킨집 사장님이었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했고, 나를 부둥켜안으며 “용기 내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오랜 어둠을 뒤로하고 처음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내딛던 그 날의 눈부심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잔뜩 위축되었던 내 자존감도 활짝 펴지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있게 용기를 낸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내 손을 잡아준 치킨집 사장님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리고 그날 치킨집 사장님은 “승권 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고 물으시며 내게 야간대학에 진학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사장님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십 대 중반을 넘긴 나는 그때까지도 딱히 하고 싶은 일 하나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뒤늦게 여러 가지 직업군을 찾아서 신중하게 고민해본 결과,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치킨집 사장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희망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특히 사장님께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간의 일들을 사죄드리고 당당한 아들이 되어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서 사회복지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아무런 존재감 없이 살아가던 내가 본격적으로 희망을 품고,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꿈에 그리던 사회복지사가 되어 당당히 사회인으로서 발걸음을 떼었다.

젊은 날 청춘이라는 이름 속에서 방황했던 나는 참사람을 만났고, 그분 덕분에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고단한 삶의 마디를 마주할 때마다 치킨집 사장님을 떠올리며 참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분이 내게 전해준 향기가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세상과 마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