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건강한 학교 스포츠 문화'는 건강한 공동체의 시작

정윤수(스포츠 칼럼리스트/성공회대 교수)

지난 해 가을, 뜻깊은 경험을 하였다. 교보생명과 교보교육재단이 함께 한 ‘2019 교보꿈나무육성장학사업’의 심사를 맡은 것이다. 장차 우리나라 스포츠를 아름답게 빛낼 초등학교 유망주 학생들을 심사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의 기회를 줘서 엄선된 몇 명이 우람한 나무가 되는 게 아니라,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숲을 이루는 풍경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해봤다. 그러나 어쩌랴. 심사라는 절차가 있고 또 몇 명을 엄선하여 제대로 격려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아쉬운 대로, 여러 전문가 선생님들과 함께 엄격한 심사를 해야 했다.

 

심사 기준이 각별했다. ‘운동 요소’만이 아니라 ‘인성’, ‘성장성’, ‘리더십’ 등 ‘비운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더욱이 이 네 가지 요소가 고르게 25%의 비중을 갖도록 되어 있어서, 여러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심사 총평을 쓰면서 “저마다의 종목에서 뛰어난 성취를 내길” 바라면서 동시에 “단지 선수로서의 성취만이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학업에도 만전을 기하고 더불어 고결한 인성까지 배양하여 품위 있는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리고 인상 깊은 에피소드 한 가지. 이렇게 심사를 하여 장학금을 수여하고 격려하는 행사가 연말에 열렸는데, 나는 해당 종목의 지도자 분들과 교보생명의 임원진이 합석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선수들이 자라다 보면 보다 높은 성취를 위해서 학업을 그만 둘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어도 장학 지원은 계속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석했던 임원 한 분이 신중하게 답을 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경우는 이번 장학사업의 취지와는 맞지 않습니다. 학업도 계속 하면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게 해당 학생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 문화가 발전하는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생인데 ‘선수’라기 보다는 ‘학생’ 아닌가요?”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우리는 ‘어린 학생’을 ‘유망주 선수’로 너무 일찍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초중학교 ‘학생’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조금 딱딱하게 말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 특히 학교 스포츠는 인간 신체의 훈육과 통제, 승패 위주의 경쟁주의, 성취력에 따른 배제와 차별 등의 상황에 놓여 있다.

스포츠에 남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들은 아쉽게도 학교 일상의 문화나 공동체를 경험할 기회 등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각종 경기대회의 참가와 이를 위한 과도한 훈련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때 스포츠를 시작한다는 것은 운동 외의 삶을 포기하거나 상실하고 오로지 운동에만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학생선수’는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학교의 일상과 단절된다.

 

이렇게 일반 학생들의 일상과 ‘단절’되어 운동만이 유일한 진로가 되는 순간, 위험한 상황에 봉착하게도 된다. 일부 그릇된 지도자들에 의해 신체를 혹사당하거나 성장 과정에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문화적, 인권적, 사회적 관계들이 차단되고 여기에 상급 학교 진학을 둘러싼 온갖 비리들까지 난무한다. 학생 개인이 묵묵히 경기를 잘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얽히고설킨 문제들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건들, 스포츠뉴스가 아니라 사회 뉴스로 등장하는 스포츠계 및 학교 체육의 문제들은 우리의 스포츠와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학교스포츠는 ‘교육’ 활동이다. 장차 직업 선수를 꿈꾸는 소질 있는 학생이든 그렇지 않은 학생이든, 스포츠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다양하다. 학생은 학교에서 자신의 요구와 능력에 맞게 다양한 스포츠를 배울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고, 건강한 경쟁 활동을 통해 스포츠의 가치를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동료와 경쟁하고 승패를 겨루는 체험은 학생이 평생 누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근간이 된다.

 

그동안 우리의 학교스포츠는 이러한 교육적 의미를 상실한 채 ‘운동과잉 학습결핍’의 학생선수와 ‘학습과잉 운동결핍’의 일반학생으로 나뉘어 비정상적인 모습을 이어왔다. 소수의 ‘학생선수’들은 학습 문화와 단절된 채 반복적으로 훈련에만 매달리는 반면,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들은 과도한 입시교육에 시달리며 스포츠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현재 한국의 학교스포츠의 현주소다.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은 국가가 엘리트스포츠선수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체육특기자 제도와 이를 지탱하는 학교운동부, 그리고 각종 국내 스포츠대회의 개최를 통해 유지·강화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스포츠 능력이 뛰어난 ‘학생 선수’는 학습권 침해와 학력저하, 진학과 관련한 불공정 및 비리, 경기실적을 위한 과도한 훈련과 부상, 중도탈락 학생선수들의 좌절과 소외, 반인권적 지도자의 전횡 및 폭력·성폭력 등 많은 문제에 노출돼왔다.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요청되는 비판적, 합리적 사고의 함양과 균형적 사회 인식이 가로막혔던 것이다.

 

한편 ‘일반 학생’들의 신체활동 참여 수준은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에 비해 매우 저조하며 연령이 증가할수록 감소하고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에서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북미를 중심으로 학교가 주도적으로 아동, 청소년의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대두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포괄적 학교 신체활동 증진 프로그램(CSPAP)’이다. CSPAP은 ‘체육이 단지 학교의 여러 교과 중 하나로 기능해서는 아동, 청소년기의 신체활동 습관화를 이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미국의 학교들은 질 높은 체육수업은 물론 틈새 시간, 점심시간, 방과 전후 등 학교 일과 전반에 걸쳐 신체활동을 생활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제라도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 우선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스포츠는 ‘건강한 신체의 우월한 운동 역량’만이 아니다. 스포츠는 나이, 성, 장애, 인종 등에 따른 다양성이 전제되며 이 다양성에 기반하여 신체활동 참여를 복합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이로써 건강권 보장, 사회적 리더십 향상, 교육 효과, 공동체 신뢰 증진 등을 도모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이 스포츠가 ‘신체 능력 우수 집단’이자 동시에 사회의 일반 문화로부터 ‘고립된 섬’이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는 학교 또는 사회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맞물려야 한다. 이를테면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가 구현되는 중요한 사회문화정책의 영역으로 접근한다. 스웨덴은 민주주의 운동으로서 근대 스포츠의 기원과 성격, 그리고 공적 가치를 특히 강조한다.

 

스포츠는 ‘특정한 산업 분야’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건강한 공동체’가 되는데 필수적인 분야다. 지금 우리는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고 사회 관계망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럴 때, 여러 사람과의 ‘신체 활동을 통한 관계 맺음’을 전제로 하는 스포츠는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 시작이 건강한 학교 스포츠 문화다. 이제 학교는 성별, 운동 능력 수준, 장애 여부 등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한 신체활동 참여를 적극 보장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초중학교 과정에서는 ‘학생 선수’와 ‘일반 학생’의 구분 없이 누구나 활달하게 신체 활동을 해야 하며 그중 소질 있는 일부 학생들도 학교의 일상 문화와 단절되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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