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59번째 편지
나의 참 기사, 크리스토포로스님

글 : 최종인(참사람 독자)

어릴 적 일이다. 우리 집은 인천 남구에 살았다. 내가 네 살때,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외환 위기의 후유증이 아직 채 가시기 전의 일이었다. 나이 들어 나를 낳으신 어머니와 어린 내가 살 길이 막막했다. 어머니가 몇 년간 일해서 적은 돈을 벌었지만 살기엔 모자랐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찾아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무작정 아버지가 자주 가는 곳을 찾았다. 말이 찾는 것이지 그냥 아무 데나 발길 닿았던 데는 다 가는 단순한 길이었다. 가볍지만 어려운 발걸음이었다. 우리 가족이 인천 사람이었으므로 나중에는 인천 전역을 돌아다녔다. 나중에는 수원에 있단 얘기를 듣고 수원에도 가서 아버지를 찾았다. 수원에서 만난 어떤 어른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기 아는 사람 중에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고 혀를 찼다. 라면만 먹고 간신히 사는 마당에 많이 걸어 다니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도 찾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제일 끔찍한 것은 집에 가는 길이었다. 아무런 성과가 없이 돌아가는 길이 너무 길어서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다가 인천 서구 가좌에 갔다. 어머니도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날도 어디서 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어머니와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이미 기대를 버렸으면서도 돌아갈 때를 찾지 못해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밤이 되고 버스가 끊겼다. 걸어가기에는 이미 늦은 시각이 되었다. 어린 나는 걷기가 싫어서 제발 걸어서 집에 가지 않기만을 바라고 땅만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그때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택시를 잡았다. 당장 밥 먹을 돈도 없었으므로 택시를 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걷기가 싫었던 나도 택시 탈 생각은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해서 말을 못 하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비장의 술책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서 마음이 두근두근하였다.

어머니도 돈이 없었다. 그냥 차를 몰고 오는 택시기사에게 다가가서 문을 열고 부탁했다. 개인택시였을까, 회사택시였을까. “애 아배가 집을 나가서 찾으러 왔는데, 돌아갈 방법이 없게 되었네요. 주안까지 차 좀 태워줄 수 없을까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화나거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아니라 침착한 목소리였다. 얼굴도 모르는 기사 아저씨는 그냥 타라고 했다. 집에 가는 길은 편안했다. 정말 간만에 집에 가는 일이 즐거웠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도 버스에 비닐봉지를 들고 탈 정도로 멀미가 심한 나였지만 그 날 집에 가는 길에는 토하지 않았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밤에 집에 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만 듣고 우리를 태워줬다. '타시라'는 기사님의 말에 불안하고 피곤했던 마음이 놓였다. 아저씨는 자신의 가족 중에도 가족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만 한마디 했다. 더 묻지도 않고 우리를 집 앞에 내려주고 다시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갔다. 때를 못 맞춘 사람을 배려하는 황금같은 침묵이자 삯 없는 승객을 배려하는 기사의 관용이었다.

후에 나는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때 택시를 타고 마냥 좋아했던 나도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배려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침묵을 지키고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베푸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수호성인 중에는 성 크리스토포로스 라는 성인이 있다고 한다. 성 크리스토포로스는 운전사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거인으로, 어느 날 은수자를 만나서 예수의 권능에 대해 설교를 들었다. 은수자는 성 크리스토포로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라며 여행자를 도와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거인인 자신의 키를 이용해 돈이 없어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 태우고 건네주었다. 그는 나중에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넜으며, 기독교의 성인이 되었다.  

나는 헤아림이 짧은 사람이라 그날 기사님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 헤아릴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우리를 집에 데려다준 기사님은 우리에게 성 크리스토포로스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오직 참사람만이 배려와 관용을 엮어서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참 기사님이 나의 나날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