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65번째 편지 
순댓국 한 뚝배기

글 : 소지연(참사람 독자)

대학 시절 나의 소울푸드는 순댓국밥이었다. 기숙사 옆 작은 골목, 다 쓰러져가는 가게에서 팔던 육천 원짜리 순댓국. 뚝배기 가득 담긴 돼지 부속물과 피순대가 어찌나 구수한지! 김 나는 하얀 국물에 밥 한술 말아 먹으면 속이 그리 든든할 수 없었다. 엄마는 대학생 아가씨가 고린내 나는 내장을 잘도 먹는다고 나무라곤 했지만.

사실 내가 순댓국밥을 소울푸드로 꼽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몇십 년간 그 가게를 지켰던 주인 할아버지다. 그는 매일 마음을 다해 순댓국을 만들고 손님을 맞았다. 잘 만든 국밥 한 그릇이 누군가의 영혼까지 따뜻하게 한다는 걸, 할아버지도 알았던 걸까? 그가 내어주는 뚝배기 한 그릇엔 항상 음식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여전함 한 뚝배기

주인 할아버지는 허리가 휠대로 휘어 얼핏 보면 거의 엎드린 것처럼 걸어 다녔다. 한평생 좁은 주방에서 종일 육수를 우리고, 내장을 삶고, 국밥을 말아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게 문을 닫는 날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나무처럼, 돌처럼,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순댓국밥집이 고향보다 더 정겹고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몇십 년째 한 가게를 지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언제가 할아버지 딸이 가게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말다툼이 붙은 듯했다.

“똥고집 좀 그만 피우소. 몸도 성치 않음서 뭐 할라꼬 붙들고 앉아 있노, 고마 팔아뿌지!”

할아버지가 크게 역정을 냈다.

“입 안 다무나? 삼십 칠 년이다. 이게 어떤 가겐데!”

사실 순댓국밥집 주변 부지가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긴 대학교가 코 앞이었으니 당장 개발에 들어가고도 남을 지역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땅을 팔면 할아버지 노후 자금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그는 돌아가실 때까지 기어코 가게를 지켜냈다. 그만큼 순댓국밥집과 손님들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강했다. 그 가게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무심함 한 뚝배기

할아버지는 늘 무심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해도 본 듯 만 듯 고개만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렇다고 그가 손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손님 취향을 신기할 만큼 속속들이 외우고 있었으니까. 내 경우는 밥 적게 국물 많이, 가끔 아침에 보는 아줌마는 내장 빼고 순대만, 항상 술친구를 끌고 오는 배불뚝이 아저씨는 청양고추 넣어서.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었다. 그런데도 결코 먼저 말을 걸진 않았다. 늘 처음 본 사람처럼 단골들을 대했다. 

사실 할아버진 일부러 손님을 살갑게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이 들면 가까워지지만, 그만큼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 마치 가족에게 말 못 한 고민을 낯선 이에겐 툭 뱉어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손님들이 어떤 부담도 가지지 않고 가게에 들르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난 그런 무심함이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그곳에 자주 발길이 닿았다. 벼락치기 하느라 밤을 새웠던 시험날 아침에도, 기숙사 통금에 걸려 강제 노숙을 했던 밤에도, 남자친구한테 차이고 술과 눈물에 흠뻑 젖어버렸던 새벽에도. 외롭거나 슬프거나 무언가가 두려울 때 무작정 그곳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호들갑스러운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언제나 음식으로 조용히 손님을 반기고 위로해주었다.

그리움 한 뚝배기

대학을 졸업하고 타지로 취업을 했다.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순댓국밥집을 찾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래도 근처에 볼일이라도 있으면 꼭 그 집에 가서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나왔다. 그런데 몇 달 전, 할아버지 가게에 ‘폐업’ 현수막이 걸려있는 장면을 마주하고 말았다. 

“할배 돌아가셨다.”

옆집 슈퍼 아줌마가 소식을 전했다. 사실 대학 시절 내내 ‘할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시면 어쩌지?’, ‘순댓국을 못 먹는 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걱정이 현실이 되자 생각보다 더 가슴이 먹먹하고 허전했다. 소중했던 추억 하나가 갑자기 뚝 떨어져 나가버린 기분이었다.
지금 순댓국밥집 자리는 아예 다 무너지고 새 오피스텔 공사가 한창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난 요즘도 가끔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특히 뚝배기에 담긴 음식을 먹을 때면 유난히. ‘그 순댓국 참 맛있었는데’ 하고 혼자 되뇌면서.

할아버지의 순댓국 국물이 유난히 진했던 건, 몇십 년간 이어진 그의 충직함, 그리고 손님을 향한 따뜻함이 섞였기 때문이었을까? 자기 일에 애정을 갖고 진심을 다했던 사람, 순댓국 한 뚝배기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냈던 할아버지가 내겐 가장 기억에 남는 참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리움 한 뚝배기 가득 담아 늦게나마 할아버지께 안부를 전한다. 

할아버지, 그동안 감사했어요. 순댓국 꼭 다시 한번 먹고 싶어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