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태어나줘서 고마워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09번째 편지 

태어나줘서 고마워

 

글 : 장샛별(참사람 독자)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최근에 많이 쓰인다. 유명인이 선한 의도를 품고 어떤 일을 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줘서 점차 그 선한 에너지를 확산시키는 것을 말한다. 내게도 그런 선한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이다. 사실 당시에는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어쩌면 많은 부모가 그렇듯 선생님은 마땅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마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직접 삶으로 보여주었는데도 말이다.

 

선생님은 마흔 명의 학생들을 언제나 꼼꼼히 챙기셨는데, 특히 누군가의 생일이면 선생님이 담임을 하는 반에서만 볼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꼭 케이크처럼 동그랗게 생긴 카스텔라를 사 오셨다. 모든 아이의 생일에 매번 그 소박함에 미안해하셨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누군가 하라고 하지 않은 일을 굳이 나서서 챙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금전적으로도 시간과 노력으로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얼마나 기꺼이 베풀 수 있을까. 어쩌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유난이라는 핀잔을 듣진 않으셨을까.

 

특히 생일을 맞은 당사자에게는 반에서 주는 특별한 선물이 있었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 등장하는 인디언식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선생님이 제안한 우리 반의 선물이었다. 조회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날 생일인 친구를 미리 알려주면 종일 생활하면서 그 친구에게 적합한 이름을 떠올린다. 그리고 종례 시간에 의견을 모아 하나의 이름을 정하는 방식이다. 사주팔자에 의해, 집안의 규칙에 따라, 어른들의 선택으로 '주어진' 이름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본 친구들과 선생님이 선물한 하나뿐인 이름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받은 친구를 우리는 늘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로 축하했다. 학년 초에 처음 이런 방식을 선생님께서 제안했을 때는 모두 웃음바다였다. 부끄럽고 민망해하며 억지로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고 첫 생일을 맞은 친구도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대로 말에는 힘이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마다 반복하다 보니 점차 마음이 담겼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말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뜻이다. 최고의 축하가 아닐까.

 

 

선생님은 자신도 엄청난 노력을 하는 분이었다. 당시는 프랑스어/독일어 일색이던 제2외국어 과목이 일본어/중국어 위주로 바뀌는 시기였다. 선생님은 원래 독일어를 담당하셨는데 미리부터 일본어를 공부해 결국 일본어도 담당하게 되셨다고 한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나는 일본어를 공부했는데, 당시 선생님처럼 좋은 강사를 본 적이 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 외에도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장면을 활용하거나 일본의 속담, 구어체 표현도 알려주었기에 당연히 처음부터 일본어를 담당한 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스스로 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다른 사람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는 채찍질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분은 그렇지 않았다. 함께 이야기해보면 타박하는 일이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고 들어주며 내내 따뜻한 시선으로 기다려줬다. 동급생들은 모두 그 선생님을 각자의 장점을 정말 많이 발견하고 이야기해줬던 사람으로 기억한.

 

얼마 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몇 년 위의 선배, 한참 아래의 후배와 대화할 일이 있었다. 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 그분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난 적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벌써 선배가 졸업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 선생님의 반에서 일어나는 그 특별한 생일파티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한번 잘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까마득하게 긴 기간 동안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는 일반적인 베풂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해 종업식에서 서로 돌렸던 롤링페이퍼를 가지고 있다. 몇몇은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구들이 많지만, 롤링페이퍼 곳곳에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들으면 선생님을 마주하고 대화할 때처럼 가슴이 따뜻하게 차오른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아낀다, 너를 존중한다는 것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느껴진다.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친구들과는 아직도 생일에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축하와 감사를 함께 보낸다. 이 크고 넓은 우주에서 너를 만난 일이, 네가 존재한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존재가 그만큼 빛나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를 깎아내리거나 비난하기 더 바쁜 날들 속에서 잠시 멈추고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주문을 알려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녀가 몇 평 남짓한 교실에서 만들어낸, 계속 만들어내고 계시는 그 선한 영향력이 분명히 이 사회의 어딘가를 따뜻하게 데우는 데 쓰이고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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