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너도 아직 모르는 너의 좋은 점들을 내가 한가득 찾아줄게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4번째 편지 

너도 아직 모르는 너의 좋은 점들을

내가 한가득 찾아줄게

 

글 : 이민영(참사람 독자)

 

 

중학교 2학년의 나는 피어싱을 하는 학생이었다. 왼쪽 귀에 세 개, 오른쪽 귀에 다섯 개. 양쪽 귀에 말 그대로 주렁주렁 피어싱을 달고 학교에 다녔다. 난 취향이 좀 별날 뿐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렇대도 선생님들 눈에 내가 곱게 보이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선생님들 사이에서 ‘3반에 주렁주렁 걔로 통하게 된 건 일주일 만이었고, 학교 뒤뜰에서 담배꽁초가 나와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 때 2학년 중 제일 먼저 교무실로 호출된 건 3월의 일이었다. 그 날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 가방 검사는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냈다. 교실 바닥에 MP3 플레이어와 봉제 필통, 문제집이 나뒹굴었다. 그것들을 주섬주섬 가방 안에 도로 넣으면서 억울하고 창피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눈물을 참는 표정이었는데 그것도 학년 부장 선생님의 오해를 샀다.

 

너 지금 인상 썼어? 넌 오늘 하교 후 뒤뜰 청소, 실시.”

 

내 인생에 그보다 더 억울하고 답답한 일은 없었다. 줄줄 새는 눈물을 닦고 또 닦으면서 청소를 하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민영아!” 조그맣고 다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본 자리에는 담임선생님이 서 계셨다. 내 손에 들린 것과 같은 쇠 집게를 들고서.

 

그녀는 말없이 쓰레기를 주웠다. 나 때문에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계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청소하는 내내 죄송하다든지 감사하다든지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청소가 끝날 때까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청소를 마친 후 선생님께서 우물쭈물하는 내게 뜻밖의 말을 건네셨다.

 

저기. 민영아, 많이 억울했지?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아까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해서.”

 

처음 받아보는 어른의 사과였다. 그때 날 슬프게 하는 어른들이 많았지만 내게 사과하는 어른은 없었다. 선생님의 그 따뜻한 미안해한 마디에 마음속 깊은 곳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항상 앙다물고 있던 입술에 힘이 풀렸고 꾹 참던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의 품에 안겨서 힘들었구나, 고생했어위로를 원 없이 듣던 순간이 나를 바꾸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나 아닌 누군가가 주는 사랑과 인정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니 더 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먼저 공부를 열심히 했다. 담임선생님의 담당 과목이던 과학을 제일 열심히 공부했고, 바로 2주 뒤 중간고사에서 전교 석차가 110등 넘게 올랐다. 선생님께선 수업 시간 중에 내 성적이 크게 오른 것에 대해 칭찬하셨고, 반 아이들이 박수와 감탄을 보내주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동시에 그 순간이 참 짜릿했다. 그때의 감각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서 지금까지도 내 성취의 원동력이 된다.

 

그 후 선생님께서는 나를 따로 불러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을 권하셨다. 당시 난 어학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특목고 진학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학비가 지원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자세히 소개해주셨다. 해당 전형으로 입학하면 학비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었다.

그날 선생님께 받은 외국어 고등학교 안내 책자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가면서 가슴이 얼마나 세차게 뛰었는지 모른다. 그건 내게 처음 생긴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가난을 놀린다고만 생각했던 세상에 처음으로 고마웠다. 누군가 나를 돕고 있다는 든든함과 내 노력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다.

 

 

이후로 나는 피어싱을 하지 않았다. 취향이 변한 탓도 있었고 더는 별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처럼 반짝이는 피어싱들을 귀에 달고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던 나를 지나버린 계절처럼 잘 보내주었다. 내가 가시를 내려놓자 친구들이 내게 다가왔다. 친구들이 진짜 나를 알아봐 주고 사랑해주었다. 나도 그들을 사랑했다.

 

민영이, 이제 정신 차렸나 봐?”

 

누군가 날 그렇게 비아냥대도 더는 슬프지 않았다.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죄송한데 민영이 원래 성실하고 착한 아이예요.”

 

담임선생님께서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씀하시고선 내 어깨를 감싸 안고 교무실 밖으로 나오셨다.

 

교실에 돌아가자 친구들이 내 표정을 살피고 손을 잡아주었다.

 

또 잔소리 들었구나. 원래 그러시잖아. 에이,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러 가자.”

 

그날 친구들 손을 잡고 가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은 정말 달았다. 그때 남에게 미움받는 건 별일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말이다.

 

2학년을 마치는 종업식,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편지를 여러 통 받았다. 아주 작은 글씨로 내가 얼마나 멋지고 좋은 사람인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좋은 점이 너무 많았다. 사랑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 차라리 별나기를 택했던 15살의 나를,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보다 더 믿고 사랑해주었다.

 

스스로 갇혀 있던 나의 마음에 조심스럽게 노크해주고 손 내밀어 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게는 참사람이다. 정말 좋은 건 그들 덕에 나도 참사람이 되고 싶어진다는 거다. 그들의 따뜻함이 나를 녹여 나도 따뜻한 사람이 됐다.

나는 상처투성이던 내 사춘기가 떠올라 지역 청소년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들의 가시에 찔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어린 나를 도와주었던 내 참사람들처럼 조용히 아이들의 마음에 노크해본다. 너도 아직 모르는 너의 좋은 점들을 내가 한가득 찾아줄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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