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7번째 편지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 박성민(참사람 독자)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설움이나 어려움 말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힘든 점은 대화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나 부스스한 차림으로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고, 일명 카공도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은 학생에겐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도 도서관 죽돌이로서 나름의 장점이랄까, 매일 앉는 자리가 있었고, 사석화한 적은 없어도 마치 내 전용석이 된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얼른 취업해서 내 이름이 박힌 사무실 자리를 얻는 것이 목표여서인지, 그 비스무리한 체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공유할 대상조차 없다는 것은, 또 이런저런 고민, 아니면 사소한 툴툴거림도 들어줄 상대가 없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힘듦이었다.

 

그날 또한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나에게 수많은 날 중 하루였다. 내 자리는 아니지만 내 자리가 되어버린 도서관 좌석에, 허리가 뚱뚱한 바나나 우유가 놓여 있었다. 바나나 우유엔 포스트잇도 아닌, 찢어진 달력 종이가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고, 그 종이엔 투박한 글씨체로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학생, 공부하는 거 힘들지? 이거 먹고 힘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바나나 우유를 선물한 이를 알 것만 같았다. 이 도서관에서 유일하게나와 매일 대화를 나누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라기보단 짧은 인사였지만. 매일 아침 새벽같이 도서관에서 가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가 있다. 도서관의 회전문을 락스와 손걸레로 깨끗하게 청소해주시는 여사님이 계신다. 여사님과의 인사는, 내가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으며 유일하게 입을 떼는 순간이다. 워낙에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추우시죠’, ‘고생하십니다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는 수없이 내뱉었지만, 언제나 안녕하세요로 끝나는 인사가 죄송했다. 그래도 여사님과의 대화는 나에겐 하루의 시작을 의미했다.

 

 

 

내 자리는 이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용석 아닌 전용석이 된 이후론 난 지우개똥을 잘 치우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책상은 깨끗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여사님은 내가 오기 전 언제나 내 자리를 특별히 신경 써서 청소하신다고 했다. 사실 바나나 우유를 받은 전날은 유난히도 힘든 날이었다. 기업 인턴에 최종 탈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 탈락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가고 싶었던 기업이기에 상심은 더 컸고, 여사님은 어두운 내 얼굴을 보고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다.

 

난 혼자인 줄 알았다. 도서관에서도 혼자였고,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터널과 같은 취업 준비의 과정에서 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여사님께선 매일 아침 도서관에 오는 수많은 학생들 중, 하루도 빠짐없이 여사님께 인사를 하는 학생은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다소 원망스러운 마음이 잠시 들긴 했지만, 나보다도 힘들고 예민한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마음은 접어두기로 했다.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그리고 그 이후의 여사님과의 대화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했다. 누군가는 나를 응원하고 있었고,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여사님은 학내 일용직 청소 일을 하고 계신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상대적으로 대우나 업무환경이 좋은 직장은 아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 학생들, 그리고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스물네살 청년에겐, 영웅이고, 참사람이다. 여사님께 여사님과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도 되는지, 정중하게 여쭤봤다. 그러자 여사님은 내게 나한테 참사람은 매일 아침 내게 인사를 해줬던 학생 자네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잠시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위로를 줄 수 있구나.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까운 것을 잊고 살기 마련이다. 좌절하고, 실패할 순 있지만 어쩌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희망이고, 자부심일 수 있다. 여사님은 내게 영웅이고, 참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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