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 네이버블로그 바로가기
  • 유튜브 바로가기

ebook보기

내가 만난 참사람

낯선 이의 온기

글 : 김민진(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은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72번째 편지
낯선 이의 온기

글 : 김민진(참사람 독자)

 

 

제게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는 참사람이 한분 계십니다. 어머니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매번 그분의 따뜻한 마음씨가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집니다. 

 

언젠가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안 보이셔. 가뜩이나 정신도 온전치 못한 분인데 혼자서 어딜 가셨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형은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믿기 힘든 얘기를 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혼자 계시다가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하나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초기 치매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기억을 못한다거나 잠깐 동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어디를 혼자서 나가시거나 사라진 적은 없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칠순이 넘은 노모를 돌보던 형수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어머니가 그대로 집을 나가버린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고, 저 역시 회사에 반차를 내고 부랴부랴 형이 살고 있는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형님 내외와 저는 어머니를 찾아다녔습니다. 평소 자주 다니시던 동네 슈퍼며 놀이터에 가보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배가 고프셨는가 싶어 빵집과 과일가게도 수소문했지만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늦은 오후까지도 어머니를 찾을 수 없던 저희는 경찰서에 신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형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통이 걸려 왔습니다. 혹시 어머니일까 싶어 받아보니, 전화를 건 사람은 한 중년 아주머니였습니다. 

“혹시 박○○ 할머니댁인가요?”

“네. 맞는데요~ 혹시 저희 어머니랑 같이 계신 건가요?”

“네~ 할머니가 좀 지치신 것 같아요. 일단 지하철역으로 좀 오시겠어요?”

 

전화를 끊고 형님 내외와 저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지하철역으로 달려갔습니다. 집으로부터 네 정거장이나 떨어진 지하철역이었습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꽤나 지치신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는 따스한 미소를 띤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끼니도 거르고 네 정거장이라는 먼 거리를 걸어오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할머니가 지하철역 앞에 쪼그리고 앉아계셔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었거든요. 할머니댁이 어디시냐고 했더니 기억을 잘 못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정신이 좀 돌아오셨는지 아들이 ‘창동 OO가게’에 있다고 불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인터넷으로 가게 연락처를 검색하면서도 과연 여기가 맞나 걱정했었는데, 바로 연락이 닿아서 참 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정말 많이 놀랐었거든요. 어머니가 다른 건 잊으셨어도 형님 가게 이름은 기억하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특히 아주머니처럼 좋은 분을 만난 덕에 별 탈 없이 넘어가게 되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보답은요~ 그런데 이런 말씀 실례지만…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신 거죠? 사실 돌아가신 저희 엄마도 치매를 앓으셨거든요. 엄마 돌보면서 치매 증상들에 대해서 겪어 본 경험이 있어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엄마 생각도 나고 혼자 계시면 위험하실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작은 도움이라도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주머니께서는 역 근처에서 헤매는 어머니를 보고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초가을 날씨에 외투도 입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머니가 걱정스러워 가던 길을 멈추고 보살펴 준 겁니다. 아주머니는 감사하게도 어머니가 추울까 봐 자신의 외투를 직접 벗어주고, 지하철 역사 안으로 모시고 와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치고 배고픈 기색이 역력한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곤 빵과 우유도 사다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곁에 앉아 지켜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역무원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자리를 뜰 법도 했는데 아주머니는 두 시간 넘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저희는 너무 감사한 마음에 아주머니에게 작은 성의표시라도 하고 싶었지만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하다못해 식사 대접이라도 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그마저도 정중하게 마다하셨습니다. 저희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어머니에게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날 아주머니 덕분에 어머니는 무사히 저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지만 마음만큼은 따스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의 인자한 미소는 꽁꽁 얼어붙은 세상을 눈 녹듯 녹이는 봄 햇살과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안정을 되찾으신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저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가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본 일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저도 아주머니와 같은 참마음을 본받아서 세상에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