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 네이버블로그 바로가기
  • 유튜브 바로가기

ebook보기

내가 만난 참사람

침묵의 증언, 흔적

글 : 신정모(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은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75번째 편지
침묵의 증언, 흔적

글 : 신정모(참사람 독자)

 

 

딸아이는 유소년 시절부터 고생하며 자랐다. 사남매 맏이에다가 아래로 남자 동생 3명이 연이어 태어났기 때문이다. 누나다워야 한다는 권유 때문에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부모의 사랑도 고명딸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더욱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뇌수술을 했기 때문에 방 안 청소와 밥 짓기, 동생 돌보기, 엄마 병간호까지 거들어주면서 학교에 다녔다. 대학 졸업 후 결혼을 해서 좋은 아파트에서 살며 시댁 집안의 첫 번째 아들을 낳아서 신혼생활의 기세도 당당했다. ‘초년고생은 양식 지고 다니면서한다’ 는 말이 딸을 두고 하는 말이듯 남 부러울 것 없이 생활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딸의 남편이 간경화로 쓰러졌다. 간 기능의 1/4정도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서둘러서 간이식수술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시댁과 친정 양 가족이 모두 근심과 걱정에 휩싸였다. 남편 형제들의 간이식 적합성을 검사했다. 모두 불합격이었다. 딸과 동생 3형제의 간이식 적합성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장기기증센터에 신청을 했지만 차례가 되려면 10년도 더 걸린다고 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가 재깍재깍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가족들의 입술도 바싹 타들어 가는데 딸 내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인터넷 카페에 광고도 했으나 기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몰래 나도 간이식 적합성 검사를 했다. 나는 이미 퇴직한데다 65세가 넘었으니 사위의 목숨을 구한다면 내가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마저도 불합격이었다. 장기기증 전북본부에 찾아갔다. 내가 뇌사상태가 되거나 숨을 거두었을 때 나의 간이나 장기를 모두 이식하기로 담보보증을 하고 사위 간이식을 하는 방법을 문의했다. 뜻은 이해하나 그런 제도는 없다고 했다. 어떤 이는 중국 사람의 간을 구매할 수 있다며 안내를 해줬다. 불법 간이식이었지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거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도 해봤다. 

 

사위의 간은 자꾸 굳어져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식수술을 통보받은 지 2주일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보름째 되는 날 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하고도 떨리고 있는 목소리였다. 간 이식수술 날짜를 잡았다는 거였다. 외삼촌이 간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부모형제간도 아니고 누나의 딸의 남편인 조카(생질)사위에게 간을 기증하겠다는 거 아닌가!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두근거리는 심장에 손을 대고 전화로 겨우 말을 꺼냈다. 처남은 이미 검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말릴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오래 전부터 결심한 일이에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내 몸의 어느 부분이라도 기증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이었으니까요. 조카사위니까 더 잘 됐네요. 매형, 조금도 부담 갖지 마세요.”

처남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내 몸 사랑하듯 남도 사랑해야 한다’ 는 처남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조건 없는 사랑,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간 기증,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을까! 아가페적인 사랑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깊은 감동과 감사의 마음으로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8남매 장남인 처남은 누나 여섯에 남자동생 하나다. 처남 내외와 어린 아들 형제를 두었다. 처남은 평소에도 남몰래 불우이웃에 쌀과 고기를 선물하는가 하면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위로하고 도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살림살이가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혼자서 수집한 재활용품을 되팔아 겨우 식생활을 해결할 정도였다. 재산은 없어도 ‘사람사랑’ 의 정신적 재산만큼은 누구보다도 부자였다.

 

간이식 수술하는 날, 처남 병실부터 들렀다. 병상에 하얀 보자기를 덮고 미소를 띄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평화스럽게 보였다. 

“저는 마음이 아주 편안하네요. 정서방한테 수술 잘 될 거라고 위로해줘요” 

자기보다 조카사위를 걱정했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듬은 엄마의 마음 같다고 할까? ‘몸과 영혼을 던져 조건 없이 주는 참사랑의 모습이 바로 저런 거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한편으론 안쓰럽고 빚진 마음으로 병실을 나왔다. 사위는 얼굴이 해쓱했지만 평온한 표정으로 재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서 적이 안심이 되었다. 

 

여덟 시간 반 동안의 간 이식수술이 끝났다. 보름 동안 자초한 투병의 고통을 이기고 처남이 먼저 건강을 회복했다. 1년 후 간 검사에서 완전히 원상회복이 되었다. 사위도 더디지만 건강을 회복했다. 처남과 사위는 의사의 처방대로 건강관리에 정성을 다했다. 일년 반이 지난 후부터는 둘 다 조심스레 일터에 나갔다. 

 

온 가족을 걱정과 불안에 떨게 했던 간 이식 수술 후 여덟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 지난해 늦가을 동서와 처남 내외가 오랜만에 수안보로 여행을 떠났다. 온천목욕탕에서 처남의 배를 보고 멈칫했다. 배꼽 윗부분에 배를 절개한 흔적이 시커멓게 보였다. 처음 봤다. 병원에서는 7~8개의 수액제를 치렁치렁 매달고 있어서 어느 곳인들 볼 여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위장 수술 자국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적임을 알고 있었다.

“음, 저곳이 바로 사위에게 간을 떼어 준 흔적이구나!”

 

나는 그 침묵의 증언 앞에서 스스로 숙연해졌다. 고통과 소망의 시간을 불사르며 병상에 누워있던 처남과 사위의 모습이 확 떠올라 오래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거룩한 인간애와 숭고한 헌신의 표징이 아닌가! 나는 그 흔적이 수십 권의 책이나 올림픽 메달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처남의 몸과 마음엔 보이지 않는 흔적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생활이 어렵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한 삶의 갈피마다 새겨진 인간 중심, 생명 사랑의 발자국인 것이다. 사람 사랑의 빛을 잉태한 한 점 한 점의 그 흔적은 먼 훗날 누군가의 가슴에서 또 하나의 싹으로 돋아나 세상을 푸르게 물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