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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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빛나는 얼굴

글 : 장희진(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은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76번째 편지 
빛나는 얼굴

글 : 장희진(참사람 독자)

 

 

저는 학원 강사였습니다. 아이 둘을 낳고 새로운 일을 찾던 중 독서지도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런데 막상 하려니 원장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학원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경쟁에서 이길 만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등 생각이 많았고, 원장이 되면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두려웠습니다. 

 

그 무렵, 공부방을 하고 있는 언니가 “너 영희 한 번 만나봐.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런데 그 친구가 화상을 심하게 당해서 얼굴이 좀 달라. 손도 이상하고…. 첨엔 나도 웬 괴물인가 싶어 깜짝 놀랐었는데 밥 몇 번 먹고, 참 존경할만한 친구구나 생각했어. 진짜 훌륭한 친구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부랴부랴 그날 저녁 주선을 부탁했고, 그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녁 8시 무렵, 첫 대면을 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심각했고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칠 만큼 얼굴이 흉물스러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겨우 하고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는데 “많이 놀라셨죠? 얼굴에 쓰여 있네요. 저는 괜찮아요. 늘 겪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죠.” 내 마음을 들킨 듯 너무 미안했습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의연하게 나를 토닥토닥해줘서 놀랐습니다. “막걸리 좋아해요? 맛있는 전집 아는데.” “네, 좋아요~” 그리고 우린 막걸리집으로 향했습니다. 막걸리 두어 잔을 마신 후, 제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웃으시며 “내 얘기 들려줄게요. 한 번 들어봐요.”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인가요? 아니 진짜 자신의 이야기인가요?” 저도 모르게 자꾸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제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지요. 가슴이 너무 아파 왔습니다. 

 

영희 씨는 12년 전 3살짜리 아들과 집에 있다가, 밥을 하는데 어쩌다 가스 불이 옷에 붙었다고 합니다. 너무 놀라서 어쩌지도 못하고 기절하게 됐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요. 수술을 7번 할 만큼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했지요. 시부모님이 죽은 사람 취급을 했고 3살 아이랑 6개월 동안 방에 갇혀 있었다고 했고요. 어느 날 아이를 보는데 아이가 이상했데요. 자폐아처럼 한 물건에 너무 집착하고 말도 안 하고요. 그 모습을 보고 살아야겠다고 여겼고, 밖으로 나와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학습지 팀장도 하고 지금의 공부방 선생님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지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괴물, 도깨비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얼굴이 흉측해서 재수 없다며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분이 한없이 가여웠습니다. 영화 같은 그의 삶에 등을 토닥토닥하며 꼭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저도 해냈잖아요. 희진 씨는 저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그렇게 그녀와의 첫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마음이 매우 아팠지만 뭔가 모를 힘이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았습니다. 그리고 원장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왔습니다. “희진 씨, 제가 영유아 임시 보호소에 봉사하러 갈 건데 지도해 줄 선생님이 필요해요. 우리 공부방 학부모님들을 중심으로 팀은 꾸려질 예정이고요.” “공부방 학부모님들이요?” 의아했고 놀라웠습니다. 저는 “봉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잘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그것도 제가 지도교사로 합류한다면 더 부담이 되고요.” 그분은 저에게 “희진 씨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힘내서 해봅시다.” 하셨지요. 그의 한 마디가 마음을 흔들었고 저는 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천군만마를 얻은 듯 너무 든든하고 힘이 되었습니다. 그의 흉물스러운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사람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만이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이 났습니다. 

 

그런데 봉사 날, 그녀의 공부방 학부모님들과 만난 후 저는 또 한 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살아 돌아왔나?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학부모님들은 그분을 입이 침이 마르게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미담도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이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은 자살을 시도했거나 학교폭력으로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 가정폭력으로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등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분 덕분에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했고요. 또 특이한 점은 토요일, 일요일에 아이들을 불러 산에도 가고 노래방에도 가고 또 저를 만났을 때처럼 막걸리도 사주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니 아이들이 한번 다니기 시작하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다닌다고 했습니다. 또 일기 쓰기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공부방의 첫 번째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참 놀랐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가 가정 일은 언제 하고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쓰나? 싶으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또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삐딱한 건 100% 부모 탓이라고 여겼고, 가정이 변해야 아이들이 변한다는 사실을 간파, 그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부모님들을 상대로 봉사팀을 만들게 됐다는 사실을요. 학교도 아니고 돈을 많이 받는 공부방도 아니면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힘겹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몇 번 봉사에 참여한 후 알았습니다. 단순히 공부방 운영이 목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 목표임을요. 

 

저는 그릇이 작아서 6개월 정도 봉사를 하고 끝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몇십 년 동안 그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뿐 아니라 가정을 살리는 일에도 동참하고 있고요. 그분이 그랬습니다. “희진 씨, 저는 자살을 4번이나 시도했어요. 세 번째까지는 죽음조차도 내 맘대로 안되는구나 싶어서 이 세상이 끔찍이도 원망스러웠지요. 그런데 4번째까지 실패하고 나니 ‘난 살아야 할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어느샌가 새로운 힘이 불끈불끈 솟게 되더라고요. 그 뒤론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배짱과 용기가 생겼지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희진 씨한테 했던 것처럼 솔직하게 내 얘기를 들려줘요. 진심이 통했는지 대부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친구이자 조언자로 대해 주지요. 제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겠죠? 이렇게 저를 믿고 따라주는 학부모님들도 없을 테고요. 저는 이 아이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덤으로 주어진 인생을 감사하며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이 일들이 너무 재밌고 즐겁고요.”

 

그의 말이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 듯합니다.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 기둥처럼 떡 버티고 있는 그녀를 오늘도 꺼내봅니다. 자신의 삶을 감사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더불어 남을 살리는 그리고 가정을 살리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그녀가 이 시대의 참사람임을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