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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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백(白)구두 아저씨

글 : 고미령(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84번째 편지 

백(白)구두 아저씨

 

글 : 고미령(참사람 독자)

 

 

오래전, 병원 검사실에 첫 입사를 했던 때였다.

병원에는 다양한 의료 직군들이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 말고도 검사실이나 치료실, 영상의학과 촬영실에 환자와 동행해주는 환자 이송원분들이 있다.

검사실 위치를 안내해주는 것 외에도, 직접 보행이 어렵거나 움직이기 어려운 분들을 직접 안전하게 모셔 드리는 역할을 해주신다. 내가 근무하게 된 청각& 전정기능 검사실에도 환자를 모시고 오는 다양한 환자 이송원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머릿기름을 발라 늘 단정하게 머리를 쓸어 올리고, 반짝이는 광택의 흰색 구두를 신은 분이셨다.

직원들은 모두 그분을 ()구두 아저씨라고 불렀다. 걸을 때마다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로 인해, 항간에는 백()구두 아저씨가 춤선생이라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소문에 개의치 않고 점차 그분을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 나의 검사실에 환자분을 모시고 왔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당시 20대 초반이었고, 그분은 거의 부모님 연세와 비슷하게 보였다. 검사실에 새로운 근무자가 왔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은 온화한 미소로 인사하시면서 입사를 축하드린다는 말과 함께 환자를 안내해 주셨다. 보기에도 내가 한참 어린 나이라는 것을 아셨을 텐데,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하시면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말씀을 하셨다. 처음엔 너무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조차 부담스럽다고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늘 미소로 환자를 안내해주시고 검사실을 나설 때 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씀을 하실 때면, 마음의 비타민을 공급받는 느낌마저 들곤 했다.

검사에 방해가 될 까봐 때론 밖에서 노크를 하실 때도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곤 하셨다. 혹시라도 검사중에 문을 여는 실례를 하게 될 때면, 밖에서 대기하시게 될 환자분에 대한 전달사항을 메모해서 조심스레 책상위에 올려두고 구두 소리가 나지 않도록 뒤꿈치를 들고 나가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후 원내에서 마주치게 될 때마다 항상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고, 간혹 원내에서 헤매는 환자분들을 만날 때도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는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할 때마다 잔디밭에서 휴지를 줍는 모습이나, 담배꽁초를 수거하는 모습도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어, 저와 가족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마운 일터가 제 집 같이 여겨져서 그냥 기분 좋게 하는 일입니다.”

청소는 여사님들이 해주실 텐데, 점심시간에 쉬시지 않고 왜 휴지를 줍는지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분의 답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일에 대한 구분을 짓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허드렛일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읽혀졌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머릿기름을 바르고 두드러진 흰 구두를 신게 된 것도, 아픈 환자들을 접하다보니 조금 더 밝게 보이고 싶어서 낸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분을 접했던 대다수의 환자와 직원들은 항상 밝고 호탕한 웃음이 인상적인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백()구두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퇴직을 하기엔 몇 년이 더 남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검사실로 환자를 모시고 오는 환자 이송원중에 백()구두 아저씨는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소문으로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그만두었다는 말만 들려왔을 뿐, 아저씨의 근황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3년쯤 지났을 때였다. ()구두 아저씨가 폐암으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에게 그분은 늘 행동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분이었는데,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보람을 느끼며, 항상 밝은 모습으로 모든 이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셨던 백()구두 아저씨...

그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닮아 나 역시, 원내에서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환자분들의 안내를 도우며 휴지를 줍는 일은 물론이고, 봉사와 헌신에 기꺼이 응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분이 신고 있었던 백()구두는, 그렇게 깨끗하고 하얀 마음을 담아 살아가려던 그분의 고운 의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