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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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진짜 진짜 선생님

글 : 이준수(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03번째 편지 

진짜 진짜 선생님

 

글 : 이준수(참사람 독자)

 

 

그냥 퇴임할 때까지 시골 학교 교실에서 애들하고 책 읽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다가 물러나고 싶어. 그것이 선생님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선배 교사 K는 말했다. 담담한 말투. 나는 이 말을 교직 육 년 차인 이십 대 후반에 들었는데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강원도 초등교사로서 지극히 당연한 의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음미해 보니, 오십 대에 접어든 교사 K가 초임 시절의 다짐을 평생 실천하였으며 여전히 그 뜻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감동하게 된다.

 

K는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토론을 하며, 매년 학급 문집을 만드는 선생님이다. 주어진 수업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상에서 이십 년 넘게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K를 나는 내심 존경했다. K는 내게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인 도시 학교에만 있지 말고 시골 학교 근무를 권했다.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배울 점이 있을 거라는 그의 말에는 의미심장한 떨림 같은 게 내포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다음 해 삼척 시내에서 삼십 분을 더 내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탄광촌 학교로 전근 신청을 냈다. 반드시 K의 조언을 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벽지 학교를 돌면 승진 가산점을 딸 수 있다는 다른 수많은 남자 선배들의 추천(K는 승진 점수 얘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이 현실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K의 진중한 음성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슴 한편에 끝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더불어 해소되지 않은 의문도 존재했다. 교직 생활의 7할 이상을 벽지와 시골 학교에서 보낸 K는 진즉 승진 점수가 찼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승진하겠다는 본인의 언급도 없고 K의 승진 시기와 가능 유무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루머 조차 돌지 않는 것인가. 당시 젊은 남교사들 사이에서는 가정을 꾸리고, 승진 코스를 밟아, 교장(적어도 교감)으로 퇴직하는 것이 바람직한 루트처럼 여겨지고 있었기에 K의 행보는 의문투성이였다. K가 권한 시골 학교생활을 해보면 의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윤곽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탄광촌으로 향했다. 그 길이 4년간(만기 근무)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탄광촌 OO초등학교의 첫인상은 다소 당혹스러웠다. 과거 탄광 산업 부흥기에 신, 개축을 반복한 학교가 필요 이상으로 커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사(校舍) 한 동을 허물고 주차장으로 바꿨기에 망정이지, 현재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서라면 학교 건물의 2/3만 있어도 충분할 듯 싶었다. K는 이런 학교일수록 기구한 사연이 많다고 했다. 쇠퇴하는 지역 산업과 고령화되는 주민구성.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스물네 명이 지내는 교실에서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의 비율이 거의 30%에 달했다. K는 내가 시골에 가면 도시보다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질 거라고 했는데, 그 말도 역시 맞았다.

  

중산층 가정이 모여있는 도심 학교의 경우 학생들에게 도전적인 과제를 내거나, 현장 체험학습 도시락을 지참해서 오라고 안내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숙제를 할 만한 학습 환경도 잘 갖춰져 있고, 현장 체험학습 날에 점심 도시락을 까먹는 풍경은 너무나도 평범하니까. 그러나 탄광촌에서는 내가 기존에 품고 있던 인식이나 전제들을 모두 초기화해야 했다. 다문화 가정의 학부모님은 복잡한 가정통신문 내용을 어려워하셨고, 도시락이 들어있어야 할 아이 가방에는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있었다.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분투하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필요에 따라 간단한 영어로 가정통신문 내용을 옮기기도 하고, 현장 체험학습 도시락을 단체로 주문하는 방안을 학부모님과 상의하기도 했다.

 

 

K는 어떻게 이런 생활을 지금껏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걸까. 가끔 학교생활이 힘에 부칠 때면 나는 K를 떠올렸다. 그가 내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았던 메시지의 의미를 확인하며 나를 다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승진 점수를 최대한 빨리 모아 두라며 내 등을 두드렸던 사람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승진 가산점을 따기 위해 억지로 시골 학교 근무를 버틴다고 생각하면, 내 인생이 도구적으로 전락하는 기분이 들어 몹시 불쾌해졌다. K는 좋은 교사가 되려면 다양한 아이들과 만나고, 거기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몸으로 겪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한 해, 두 해 탄광촌 근무를 하면서 K가 말한 여러 가지 배울 점의 진의를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벽지 학교의 애로사항을 반영하여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는 행정적 조치와는 결이 다른 문제였다.

 

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다소 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이지만 언제나 이 질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나름의 답을 달아보자면 교사는 아이들과 만나고 교육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는 교직 생활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만 잊지 않아도 후배 교사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승진을 하려는 분 중 일부는 교실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하루빨리 교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교장을 꿈꿨다. 나는 교실 탈출 몸부림을 행하는 자 옆에 있으면 참담함을 느꼈다. K도 그 모습이 싫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수고스럽지만 퇴직하는 그 날까지 평교사로서 교실을 지키며 학생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했던 거고. 그것도 비교적 힘든 친구들이 많은 시골에서.

 

나에게 K는 십 년이 넘는 교직 생활에서 만난 몇 안 되는 길잡이다. 세상 사람들 다수가 진지한 성찰 없이 따르는 대세의 탁류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자신의 가치를 실천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참된 사람. 나는 K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의 면모를 따라 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쉽게 취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K 같은 사람이 멀리 않은 곳에 실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큰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