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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교육공무원이 아닌 진짜 교사

글 : 권일한(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20번째 편지 

교육공무원이 아닌 진짜 교사

 

: 권일한(참사람 독자)

 

 

교사가 됐을 때, 나이 든 어른은 많았지만 존경할 어른이 없었다. 교육공무원이 아닌, 진짜 교사를 만나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사는 사람, 절차에 매이지 않고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 이상구 선생님은 존경할 어른, 진짜 교사였다.

 

선생님은 가난한 아이, 엄마 없는 아이 집에 찾아갔다. 생필품을 사주고 아이들과 놀아줬다. 한두 번 가고 말지 않았다. 아이를 가르치는 동안은 물론, 이듬해에도 그 뒤에도 찾아갔다. 밥을 챙겨주고, 가출하는 아이를 부모보다 더 열심히 찾아다녔다. 아이 집에 찾아가서 화장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00초에서는 학부모에게 온갖 쌍욕을 들으면서도 3년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를 학교로 데려왔다.

 

2012715, 소달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났다.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 9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형은 소달초 교무부장이었다. 교사 3명이 2개 학년을 동시에 가르쳤고, 형은 교무부장을 하며 두 과목을 가르쳤다. 교감도 보건교사도 없는 작은 학교여서 할 일이 많았다. 가스 폭발 사고로 소달초 아이 5명이 다쳐 서울에 있는 화상전문병원에 이송되었다. 형은 주말마다 병원에 가서 아이를 돌보았다. 모금운동을 하고, 방송 관계자를 만나고, 아이를 가르치다가 주말에는 서울에 갔다. 형은 병원에 갈 때마다 오열하는 학부모님을 보며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했다. 학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울며 위로하면서도 너무나도 죄송스러웠다고 한다.

 

가스폭발 사고가 나고 40일 지나서 한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 두 달 뒤에 두 아이가 집에 왔고, 10월에 3도 화상을 입은 두 아이가 학교에 나왔다. 전교생 14명 중에 화상 환자가 다섯이나 되었다. 형은 학교 업무를 처리하고, 수업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형은 간이 약하게 태어났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혹사해서 간이 견뎌내지 못했다. 화상 환자 5명 중 6학년 두 아이를 졸업시키고 형이 휴직했다.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형을 대신해서 내가 소달초에 갔다. 아이들이 계속 가스 폭발 치료를 받았다. 3학년 여자아이가 “~ 교회에서 찐빵을 쪄주려다가 가스가 폭발해서 무척 힘들었어. 화상을 입어 입원했는데 잘 움직이지 못했어. 걷지도 못했고 붕대를 감고 가만히 누워있기만 했어. ~ 전에는 약을 5개 발랐는데 지금은 5개가 늘어서 10개를 발라야 해. 아침, 점심, 저녁마다 바르는데 약 바르는 게 힘들어.”라고 글을 썼다. ‘지난해에 형이 병원에서 돌본 아이가 이랬구나!’ 붕대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 곁에서 형은 웃긴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거다. 마음속으로는 울면서.

 

이듬해 형이 학교로 돌아왔다. 형은 간 이식 수술을 했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했다. 감기 같은 작은 병에도 많이 힘들어했다. 아이들과 텃밭에 곡식을 심는 날 형이 흙을 만졌다. 다음날 손바닥 껍질이 막 일어났다. 면역억제제를 먹으면 세균의 침입을 막지 못해서 흙만 만져도 그렇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과 텃밭을 일구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악기를 가르쳐서 노인정과 마을회관에 찾아가 노인들을 위해 연주회를 했다. 사고 난 아이들 돌보느라 간 이식 수술을 했는데도, 학교에 돌아와서 또 아이들을 돌보았다.

 

소달초 학부모는 2/3가 광부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지 않는 집이 많았다. 전교생이 열 명밖에 안 되어서 학부모와 함께 현장체험학습을 다녔다. 2015년에는 전교생과 학부모가 함께 울릉도에 다녀왔다. 형이 교무부장으로 학부모를 이끌었고 나는 실무를 맡았다. 형과 함께하면 아이들을 위해 더하게 된다. 진짜 교사, 참사람이라 생각한다.

 

형이 소달초에 이어 바닷가 학교에 갔다. 운동장에 천연잔디를 깔았는데 7시에 출근해서 날마다 물을 주었다. 제자가 급하다고 돈을 빌려달라 하면 오죽하면 전화했겠냐!’ 하며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라도 빌려주었다. ‘못 받을 돈이라 생각하고 줬다.’고 했다. 제자들은 형을 좋은 아버지처럼 생각했다. 결혼할 때도 연락하고, 이혼해도 연락했다. 힘들 때는 더욱 선생님을 찾았다.

 

나도 힘들 때 형에게 전화한다. 형은 참 좋은 선생님, 참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