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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삶을 통해 가르치는 당신의 이야기

글 : 박은우(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28번째 편지 

삶을 통해 가르치는 당신의 이야기

 

: 박은우(참사람 독자)

 

 

여기, 우리 학교에는 십일 년째 학생들과 함께 산을 걷는 교장 선생님이 있다.

 

이년 반쯤 전,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옥천 군북면 추소리에 있는 작은 대안학교로 옮기기로 한 날, 그날 나는 교장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선생님의 첫인상이란, 그저 여느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같은 인자한 웃음에, 60대 할아버지치고는 조금 큰 키. 그 정도였다. 별다른 생각이 없이 들어간 그곳에서 마주한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내 예상에서 정확히 빗나간 모습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우리 학교의 하루는 시끄러운 알람시계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졸린 눈으로 매일 하는 아침 산행을 위해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일과다. 새벽마다 하는 아침 산행은 모든 학생의 불만거리이기도 하다. 아침 산행에서 엿볼 수 있듯 대안학교인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의 모습과 무척 다른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하는 자율적 공부도 일반 학교에 다니던 나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왔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교장 선생님이 우리와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하는 아침 산행도, 모든 선생님이 퇴근하시는 저녁 시간도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함께하신다.

 

인자한 웃음이라는 내 첫인상이 무색해질 정도로 교장 선생님은 엄격한 분이셨다.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호통 소리. 선생님은 잘못된 것을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으시다. 게으르게 살아가는 것, 거짓말이나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들. 교장 선생님이 절대 넘어가지 않는 모습들이다.

 

그렇지만 남을 챙기는 것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선생님께 걸핏하면 혼이 나고는 했다.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에 내가 왜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써야 하지, 내 할 것도 너무 많은데.’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매일 말씀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내게는 너무 이상적인 것으로만 느껴졌다. 사랑, 남을 위한 봉사들을 강조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랬던 내 생각을 송두리째 채 흔들어 놓은 것은 다름 아닌 교장 선생님의 삶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초등학생 아이들이 여럿 있는데, 늘 아이들에게 새 물건들이 있는 것이었다. 양말, 공책, 필기구까지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들로부터 그것이 선생님의 배려라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선생님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함께 새벽에 일어나셔서 늘 뒤에서 가장 뒤처지는 아이들과 산을 함께 걸으시는 모습. 지나가며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절대 모른 척하지 않으시는 모습. 절대 좋은 옷 한 벌 사지 않으시고 어디에 돈을 써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모습. 이 전에 그냥 지나쳤던 선생님의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선생님은 묵묵히 그런 삶을 살고 계셨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 아닌가 싶었던 그 삶의 모습을 선생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셨다.

 

얘들아, 가장 뒤처져 있는 사람과 함께 걸을 줄 아는 삶을 살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내가 이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삶을 통해 배우고 있는 자세는 이러한 것이다. 내 삶에서만 머물러 있었던 시선을 돌려서 남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정직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어 내 삶이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그러므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삶. 그것이 내가 살며 배운 모든 공부보다 소중한 교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학교에도 그런 교장 선생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있다. 아직 학업이 느려 공부를 어려워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알려주는 학생들의 모습들. 가파른 산길에서 서로 손을 잡아주는 모습들. 맡겨진 일들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려는 학생들의 모습들이다. 그러니 교장 선생님께서는 무엇보다 삶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계신 셈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말보다는 깊은 글로, 말보다는 스치는 작은 웃음으로, 또 말보다는 삶으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 교장 선생님은 그런 분이다. 선생님의 삶은 많은 것들을 나와 우리 학생들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또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 삶을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 삶에는 선한 영향력이 있는가?”

 

인생이란, 흔히들 경주라고 한다. 삶이 멈추지 않고 뛰어야 하는 경주라고 한다면 참사람이란, 가장 먼저 경주를 끝마친 사람도, 가장 빨리 뛰어 최고기록을 내는 사람도 아니다. 참사람이란, 가장 뒤처져서 걷는 혹은 더는 걸어갈 힘도 없는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그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걸어가자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을 통해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우리 교장 선생님에게서 참사람의 모습을 본다. 늘 올곧은 자세로 또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는 선생님께 제자로서, 그 삶을 통해 변화한 사람으로서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여기, 우리 학교에는 오늘도 학생들과 함께 산을 걷는 교장 선생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