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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글 : 문희봉(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31번째 편지 

만나고 싶은 사람

 

: 문희봉(참사람 독자)

 

 

신록의 계절을 지나 녹음으로 접어든 무렵이어서인지 한낮에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등에는 땀이 흥건히 고일 정도의 초여름의 더위가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즐거운 나들이였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하여 떠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이면 대여섯 차례 찾아뵙는데 그날도 부모님은 아주 반가이 맞아주셨다. 그간의 생활에 대해서 자세히 물으셨다. 나에 대한 얘기는 물론 가족 모두의 안부까지를. 나 또한 여쭙는 것 이외에 세상 돌아가는 얘기까지도 시시콜콜히 말씀드렸다.

대전에서 부모님이 계신 예산땅(그것도 서산과 접경 부근이니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2정도를 도보로 걸어야 했으니 등에는 땀이 흥건히 고일 수밖에. 그러나 인사를 드리고 산소 앞에 앉으니 골짜기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마음까지도 상쾌하였다.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고 했던가? 아버님과의 해후도 긴 시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날은 덥고 심한 갈증을 느꼈기에 나는 목을 축여야만 했다. 내가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로 학교라면 반가이 맞아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초등학교를 찾았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로 적막에 싸인 교사(校舍)는 마치 절간 같았다. 내가 만난 선생님은 그 날 교사 앞의 화단에 진딧물 약을 뿌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사와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그분이 청부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길로 교무실을 찾아 청부(나중에 알아보니)가 따라주는 물 한 컵을 얻어 마셨다. 냉장고에서 꺼내 주는 물이었기에 심장부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물 한 잔 받아 마시고 나오는데 아까의 선생님은 약통을 내려놓고 그늘에 두 다리를 길게 뻗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건넨 나의 인사를 선생님은 반갑게 받아 주셨다. 그렇게 하여 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외진 산간 벽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다람쥐가 친구의 역할을 해 주는 그런 산골을 요즘은 다들 버리고 떠난다. 그렇게 초등학교 평교사인 선생님은 시골이 좋아 그곳에 머문다고 했다. 그곳이 자기 고향이 아닌데도 말이다. 구름같이 모여드는 도회지 아이들보다도 더 영롱하고 순수한 아이들이 좋아서 그곳에 머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의 얼굴은 적단풍으로 변해 버렸다. 나는 그때 선생님의 투철하신 교육 철학을 들으며 기회만 있으면 도시로 나가야 하겠다고 벼르고 있던 나의 사고에 일대 수술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얘기를 한 귀로 흘리며 선생님은 이름 석 자를 남기려고 안달을 부리는 것도 부질없이 재물을 탐내는 그런 생활도 싫어한다고 했다. 순한 양과 같은 아이들의 눈빛 속에는 순수가 들어 있다고 하면서 아카시아 향기 그윽한 그들의 순수한 영혼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자연과 더불어서 말이다.

 

산사람이 산이 좋아 사는 것이지 다른 의미가 있겠느냐고 나에게 반문했다. 왜 이런 산골에서 개구리처럼 좁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느냐고 물었던 나의 유치한 질문에도 선생님은 허허웃어주심으로써 답변을 대신했다. 선생님은 이런 측면에 있어서도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다. 신사고(新思考)를 소유하고 계신 신선생(新先生)님이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고 했다. 또 초보적이나마 자기의 소질이나 적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발견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다가 각자의 성격, 흥미, 장래의 희망 등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탐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 듣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 산골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가르침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될 미래를 살아가는데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사고(思考)는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고 프랑스의 루소는 말했다. 한 번은 생존을 위해서, 또 한 번은 생활을 위해서 말이다. 인생 행로에 있어서 만날지도 모르는 그 사나운 눈보라와 파도를 슬기와 지혜로서 헤쳐나갈 때 거기에서 생활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교육은 풀과 나무를 키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우리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은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가지를 비틀어 철사로 잡아매고 가위로 잘라내는 일이 아니다. 그 풀과 나무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잘 자라도록 햇빛을 받게 하고 벌레를 잡아 주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보살펴 주고 물을 공급해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누던 대화 중간에 선생님은 초면인 나에게 막걸리를 잔 가득 따라 주며 인근 관사(官舍)에서 가져온 산골의 진미인 무공해 나물 맛을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었다. 그때 산기슭을 돌아오는 바람이 선생님의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갔다. 머리칼이 뒤로 젖혀지는 순간 나는 그 선생님의 모습에서 세상의 순수란 순수는 모두 자신의 얼굴에 새겨 넣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난 그 날, 너무나도 벅찬 희열을 맛보았다. 그 날 그 선생님과의 만남은 신()께서 점지해 주신 너무나도 황홀한 창조였다. 그래서 신()께 감사를 드렸다. 실적 위주의 오늘날 교육의 허상을 접하며 살아야 했던 나는 선생님의 고매한 교육 철학에 감탄에 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투명한 햇살, 정갈한 바람 속에서 물기 번득이며 풋풋하게 자라는 화초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때 큰 바위 얼굴을 한 선생님의 넓고 단단한 어깨를 보았다. 초여름의 지하수가 시원하기로 어찌 그 선생님의 서늘한 지조를 넘보겠으며, 화초잎이 싱싱하기로 어찌 그 선생님의 영혼을 넘보겠는가.

 

전부터도 스승 존경 풍토 조성은 교직에 있는 구성원 모두의 힘이 집결돼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었지만, 그 선생님을 뵙고 온 후로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떠나질 않았다.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기본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본다. 전문적 능력을 갖추고 투철한 사명감으로 순수한 교육애를 발휘하여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깊은 자기 성찰과 부단한 연찬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을 베풀 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르치기는 쉽되 본을 보이기는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학생들에게 감화를 주는 일이 아닐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키우는 일이다. 이런 투철한 자세로서 내적 자아를 착실히 키워 가고 있는 그 선생님이야말로 스승 존경 풍토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제자를 키워내는 선생님의 화사한 웃음 속에서 오늘도 그곳의 아이들은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며 산골학교 운동장을 뛰고 달리고 있으리라. 풋풋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오늘도 선생님의 지칠 줄 모르고 샘솟는 사랑을 마음껏 마시겠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도 덩달아 벅차오른다.

 

그러한 사고(思考)와 철학을 갖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다음 성묘길에도 그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