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품생품사 8화 '질투와 시기'편
교보교육재단 청소년 인성 콘텐츠 품생품사. 제8화는 친구 관계 간의 질투와 시기라는 감정들이, 과연 학교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이야기합니다.

웹툰의 주인공 ‘재인’은 같은 반 ‘예지’에게 1등을 빼앗긴 질투심에 그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모의합니다. 경쟁과 성과가 중심이 된 학교 현실을 보여주는 한편, 질투와 시기로 인한 부정적 행동이 상대와 나 모두에게 어떤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이야기합니다.

에세이의 주인공 ‘오리’는 질투의 대상으로서 따돌림을 당해야만 했던 아픈 상처를 가진 청소년이에요. 모둠 활동을 하면서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자, 오리는 시기를 받는 친구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엿보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질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감정이에요. 나에게는 없는, 타인의 재능과 장점이 부럽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 질투라는 감정과 마주했을 때, 때때로 나도 모르는 사이 부정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는 합니다. 바로 험담, 비방, 따돌림과 같은 형태로 말이죠.

하지만 질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이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컨트롤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일상에 건강한 긴장과 활력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더 발전할 수 있는 동기부여로 작용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한편, 상대는 어떤 훈련과 과정을 통해 해당 장점을 습득하게 되었는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무엇보다도 질투라는 감정으로 지금 힘겨워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내가 질투를 느끼고 있는 친구들이, 역으로 나를 질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는 특별함의 색과 모양이 서로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화는 품생품사 사례발굴위원 창덕여중 오유진 교사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나, 오리. 

 

가오리도 아니고 이오리(이효리)도 아니고 나는 나오리다. 아빠가 좋아했던 영화 속 여자 주인공 이름이 오리였다나, 여주인공이 기르던 애완동물 이름이 오리였다나 하여튼 황당한 이유로 내 이름은 오리 꽥꽥 나오리가 되고 말았다. 

 

내 이름을 처음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웃는다. 전에는 그 웃음을 좋아했었다. 그들과 함께 나도 활짝 웃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웃음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싫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잘 웃지 않는 나는 자연스럽게 말수도 줄어들었다. 대신 난 춤을 잘 춘다. 누구보다도 잘 출 수 있다. 나는 어쩌면 말이나 표정보다 춤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수다쟁이였던 나는 이제 누군가 말을 먼저 걸지 않으면 종일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심하게 조용한 중학생이 되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절절한 진심을 말로 전달하거나 적절한 정서적 반응을 담은 표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줄 아는 기능이 필요한데, 한때는 꽤 원활했던 그 기능의 연마를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소통 기능이 퇴화한 나의 인간관계가 딱히 그 전보다 더 처참해지진 않은 것이다. 말수가 없는 나를 친구들은 의외로 편하게 생각했다. 좀처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나의 무반응, 무표정을 때론 시크하다고도 했다. 2학년 1학기 영어 수행 평가가 발표되었던 지난주만 해도 그랬다. 수행 평가는 케이팝 중 한 곡을 정해 모둠원 전체가 참여하는 댄스 커버 영상을 만들되, 그 가사는 영어로 번역해서 자막에 넣어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막강한 춤 기능이 탑재된 나는 순식간에 우리 반 최고의 인싸 듀오 성희과 하진이와 한 모둠이 되었다. 

 

“오리야! 나 네 소문 들었어. 너, 별명이 3분 완성이라며?”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말을 걸어온 건 성희였다.       

 

“이 분이 그 유명한 직관직따 나오리 선생이셔. 보는 즉시 안무를 따서 바로 관절에 안무를 막 입력하시는 그런 분이라고!!”

 

성희와 하진이의 말에 딱히 틀린 말이 없었다. 유쾌하고 재주 많은 성희와 하진이는 매주 틱톡에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는 게 취미다. 이번 수행에서 성희네와 한 모둠원이 된다는 건 나에게도 꽤 든든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과 모둠이 되기 위해 나는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굳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나를 어필하지도 않았다.

 

“나랑 하진이가 촬영해서 편집하면 되니까, 이제 번역 전문가만 영입하면 우리 그냥 탑 티어로 직행인데."

“이민지한테 말해 볼까? 우리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민지는 그르애듀에이션했대. 미쿡에서.”

 

하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눈으로 민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민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왠지 시무룩하게 보이던 민지는 이쪽에서 보내는 시선을 느꼈는지 슬며시 얼굴을 들다가 우리를 발견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도 성희는 얼른 민지에게 다가갔다. 

 

영어 능력자 민지는 그렇게 모둠원이 되었다. 완벽한 분업. 민지는 가사 번역, 나는 안무를, 성희는 연출 겸 촬영을, 하진이는 자막을 포함한 영상편집을 담당하기로 했다. 우리 네 명은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민지야, 혹시 좋아하는 노래 있어? 어차피 번역하는 건 너니까 의견이나 아이디어 있음 말해줘.”

 

성희는 미국에서 온 새 친구 민지에게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사실은 나도 민지가 궁금하긴 했다. 나처럼 말이 없는 민지. 그 애는 원래 말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나처럼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건지 나는 그게 궁금했었다.

 

“요즘 많이 듣는 건 <refresh>야. 지코랑 강다니엘이 부른 거. 가사도 맘에 들고 뮤비 컨셉이 한국 문화래.”

 

민지가 대답이 끝나자마자 하진이는, 

 

"노랜 좋은데 이거 콜라 광고를 위해 만든 거 알지? 게다가 안무도 딱히 없어서 우리가 이걸 하려면 안무도 전부 새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단점이..."

 

나로선 어떤 곡이든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의견을 내지 않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듣고만 있었다. 하진이가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추천했고 그 의견에 성희가 찬성해서 드디어 곡이 정해지려던 순간이었다.

 

“저, 나도 물론 bts 좋아. 그런데 이 곡도 역시 수행 평가의 주제에 잘 맞는 건 아닌 거 같아.”

 

늘 소극적으로 보였던 민지가 의견을 냈다. 

 

“무슨 소리야??”

“bts는 우리만 좋아하는 그룹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나 해서..”

 

오.. 맞는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난 또 뭐라고. 근데 그냥 좋은 노래 하나 정해서 영상만 재밌게 만들면 되지 않아?”

 

하진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싫어하는 그 웃음이다. 

 

“아냐, 아냐. 맞는 말야. 오! 민지 예리한데! bts 곡 말고 외국에 덜 알려진 그룹이나 아이돌 노래로 정해도 좋을 거 같아. 어차피 곡은 좋은 거 많잖아.” 

 

성희가 의외로 민지의 편을 들었다. 그러자 용기를 얻은 민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송국 직원도 아니고, 실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물의 완성도만큼이나 우리가 곡을 정한 이유나 분석이랄지 그런 참신한 기획이 좀 더 바탕이 되면 높은 평가를 받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가? 휴...뭐가 되게 어렵네.”

 

하진이는 이번에도 웃었다. 그 애는 살짝 올라오는 짜증을 웃음으로 숨긴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민지는 하진이의 짜증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오래 전 그랬던 것처럼.

 

민지는 작년 6월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우리와 입학을 함께 하지 못했다. 새 학기의 시작을 함께 하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겉돌고 있었더랬다. 물론 민지에게 호기심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지만 변화된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민지는 그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바로 여름 방학을 맞는 바람에 결국 민지는 가까운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고 개학을 한 후에도 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늘 소심해 보였던 민지였는데 오늘은 긍정 에너지를 온몸에 가득 채운 사람처럼 마냥 신나 보였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ost처럼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좋은 곡은 어때?”

“오오! 뉴트로!! 좋아 좋아.”     

 

성희의 열렬한 호응.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봤다. 하진이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 것을. 그건 분명히 불쾌를 동반한 질투였다. 하진이가 잠깐이나마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지만 그 미묘한 변화를 성희와 민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 모둠은 bts 대신 케이팝의 조상뻘 되는 추억의 탑골 가요 중에서 곡을 정하기로 했고, 혼성그룹 룰라의 <3!4!>나 그룹 듀스의 <여름 안에서>을 두고 치열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룰라의 곡으로 결정했다. 곡을 정한 후에는 모든 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민지의 영어 실력 덕분이었다. 

 

민지는 쉬는 시간에 틈틈이 노래를 듣더니 하교도 하기 전에 번역을 마쳤다. 성희는 물개 박수와 돌고래 소리로 혁혁한 성과를 치하했다. 나는 얼른 하진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성희의 박수를 거들었다. 나는 하진이의 웃음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됐다.

 

“담 주부터 안무 연습하고 주말에 촬영하면 되겠다. 그치?”

“아마 우리가 젤 빠를 걸.”

 

사실 안무는 이미 관절과 근육에 기록해 둔 터라 당장 오늘부터 연습을 시작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전교생이 다 아는 핵인싸이면서 절친인 하진과 성희는 영어 수행에만 매달려 있기엔 꽤 바쁜 아이들이었다. 그네들은 작년부터 일주일에 한두 개씩 꾸준히 sns에 영상을 올려왔었고, 이번 주말도 내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주말이 지나도 인싸 듀오의 영상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교실에 막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영어는 잘하더라. 어, 으리으리해. 근데 솔직히 눈치는 좀 그래.”

 

교실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하진이였다. 하진이가 알고 있는 으리으리한 영어 실력의 소유자는 누굴까? 모르겠다. 모르기로 하자. 나는 휘말리고 싶지 않으니까. 무표정으로 교실을 들어서는 나에게 하진이는 유난히 명랑하게 말을 건넸다.     

 

“오늘부터 연습해? 이 흐느적대는 팔다리에 댄스 기술을 주입할 수 있을까? 근데 나 댄스만 되면 정말 전국노래자랑 나갈지도 몰라. 울 할아버지 소원이란 말야.”

“응, 기본기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냥 주입식으로 슉슉 넣어줄게. 주입이 목표라면.”

“우아...”     

 

쉬는 시간마다 성희는 하진이와 함께 민지 자리로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sns계정에 올렸던 영상에 붙은 태그를 영어로 바꿔 달라는 부탁도 하고 그냥 이런저런 수다도 떨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나도 스르륵 세 사람 사이로 스미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이야기를 듣다가 주말에 틱톡 영상이 업데이트 안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성희의 부탁으로 민지는 성희와 함께 서점에 들러서 영어 회화책을 보고 왔고, 하진이는 성희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편집을 마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하진이가 서운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안무 연습이 시작되었다. 룰라의 멤버는 넷이고 우리도 넷이라서 제비뽑기로 각각의 역할을 정하기로 했다. 룰라의 노래도 좋았지만 안무도 아주 귀엽고 흥겨웠다. 음악은 그대로 쓰고 번역된 가사만 자막으로 올릴 계획이라 노래 연습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런데 민지는 심지어 노래도 아주 잘했다. 채리나의 고음을 따라 부르는 민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후련했다. 그런데 하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민지야, 그만해. 나 좀 헷갈려.”

“어?”

“하진아 뭐가 헷갈려?”

 

하진이, 민지, 그리고 성희가 번갈아 하는 대사를 구경하는 관람객이 된 기분으로 나는 작은 갈등을 엿보고 있었다. 

 

“민지가 자꾸 노랠 따라 부르니까 신경이 쓰여서 그래. 게다가 채리나는 어차피 민지 파트도 아니잖아. 안 그래도 채리나 안무가 젤 어려운데 민지 때문에 더 헷갈려.”

“에이, 그러게 네가 정신을 차리고 해. 노래에 맞춰 춤추는 건데 노래 때문에 헷갈리면 말이  되냐?”

“......그치? 그러네.”

 

성희의 말에 하진이는 바로 수긍했다. 이번에도 하진이는 웃었다. 신경이 쓰이는 웃음이다. 인상을 쓰는 것보다야 웃음이 더 낫다고 모두 생각하겠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거나 인상을 쓸 때는 그 감정은 그대로 선명하게 보이니까 차라리 쉽다. 하지만 웃음 뒤에 감춰둔 감정이 꼭 하나만은 아니란 걸 나는 쓰라린 경험으로 배웠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은 상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낼 때뿐만 아니라 상대를 향한 적의와 조롱을 꼭꼭 숨기는 데에도 유용하다는 걸 나는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알아버렸다. 내가 잘 웃지 않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민지와 성희도 웃음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을까? 안 물어봐서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민지가 다시 전처럼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슬퍼졌다. 

 

아마도 여기부터였던 것 같다. 성희가 민지를 두둔하지만 않았어도 그동안 차곡차곡 적립됐던 하진이의 작은 서운함이 민지에 대한 질투심과 만나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초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꼭꼭 감춰둔 나의 옛날 이야기......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나는, 그래도 춤추는 것만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그냥 저절로 되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너무나 쉬운 건 다른 사람에게도 퍽 쉽고 재미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 무지가 학교 운동회에서 교단에 올라가 대표로 함께 춤을 췄던 친구 다섯 중 한 명의 신경을 나도 모르게 긁었던 모양이었다. 그 아이는 천사같이 예쁘게 생겼었다. 내 앞에서 예쁘게 웃으면서 내가 없을 땐 내 흉을 보았다. 내 이름이 귀여워서 부럽다더니 내가 없는 데선 내가 오리라서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다고 했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차차 말수를 줄이고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 내 마음의 평온을 깨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심기도 지켜왔다. 복잡한 생각이 들면 귀는 꼭 막고 달아나서 안전하게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끝도 없이 달아나면, 달리고 달려서 도대체 난 어디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아, 복잡해지려고 하기 전에 신경을 끊자.

 

화요일은 민지가 클라리넷 레슨을 간다고 연습에 빠졌다. 그래서 우리 셋만 안무 연습을 하게 됐다. 

 

“민지가 체력이 좀 안 좋은가 봐.”

 

뜬금없이 민지의 걱정을 하는 척 말을 꺼낸 건 역시 하진이였다.

 

“왜? 민지 어디 아파? 오늘 빠진 건 클라리넷 레슨 때문이라던데.”

“아니, 얼핏 들으니까 주말에도 나가야 해서 피곤했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

“주말에 서점에 다녀와서 피곤했대? 뭐야, 그럼 나 때문에 오늘 빠진 거야?”

 

성희는 걱정이나 미안함보다 억울함이 앞서 보였다. 

 

“아니, 뭐. 꼭 그렇게 얘기한 건 아니고. 아, 몰라. 하여튼 민지 너무 피곤하게 하지 말자고. 아메리칸 스타일이잖아. 아름다운 개인주의 몰라? 우리가 자꾸 선 넘으면 애가 곤란해하겠지, 뭐. 안 그래?”

“내가 선 넘고 있는 거야? 친해지자는 게?”

“민지가 별로 편해 보이진 않더라고. 근데 걔가 원래 사교적인 애는 아니잖아. 작년에 같은 반인 애들하고도 친하지 않은 걸 봐. 모든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아, 하진이는 고도의 작전 중인 것이다. 이번엔 내가 다 억울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하진아, 그러지 마! 그러지 마!’ 그냥 입속으로만 주문을 외우듯 중얼댔다. 

 

수요일 아침이었다. 우리 학교는 언덕 위에 있어서 버스에서 내리면 언덕을 따라 등산을 하듯 올라가야 한다. 등굣길에 민지를 봤다. 나보다 한참 앞선 민지는 저보다 더 앞서가고 있는 성희와 하진이를 발견하고 막 뛰어가기 시작했다. 

 

난 숨을 돌릴 겸 잠시 서서 그 풍경을 바라봤다. 민지는 곧 성희네를 따라잡았지만 셋은 함께 걷지 않았다. 셋이 서서 인사를 하는 것 같더니 성희와 하진이는 화가 난 듯 차갑게 다시 앞서고, 민지는 뒤로 쳐졌다. 민지의 어깨도 고개도 같이 쳐지는 게 그냥 보였다. 그때였다. 민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민지의 표정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거울에서 발견했던 상처받은 나오리의 슬픈 표정. 순간 나는 스위치가 올라가고 전깃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 

 

“민지야! 성희야! 야!! 유하진!!”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갔다. 민지를 보며 내가 웃었던 것도 같다. 이건 연기인가? 그래 연기다. 웃음 뒤에 나도 다른 걸 숨기고 뛰어갔다. 반가움만은 아니었으니까. 성희도 하진이도 눈이 동그래졌다. 모드가 바뀌어 수다쟁이가 된 나를 다들 신기해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민지! 너 연습 한 번만 더 빠지면 촬영할 때 벌칙 의상 입힌다.”

“??”

“성희 넌 왜 틱톡 안 올리냐? 너희가 그거 안 올려서 아직도 지난 주말의 스트레스가 이월된 거 같단 말야.”

 

아무 말이나 막 떠들었다. 그런데 역시 수다쟁이의 피가 어딜 가지 않는 건지 한 번 수다가 터지니까 진짜 내 귀가 아플 지경이다.

 

“아, 진짜 누가 오리 아니랄까봐..아, 시끄러워. 너 지금까지 내숭 떤 거야? 너도 나처럼 뭐 주눅 들어서 그냥 말 안 하고 있었던 거냐?”

 

민지는 웃으면서 나를 책망했다. 우린 네 사람은 왜 그런 건지 모르지만 그냥 자꾸 웃음이 나왔다. 웃음에 다 섞었다. 미안함, 서운함 등등. 나는 하진이에게 팔짱을 끼면서 말을 걸었다.

 

“하진아, 집에 가서 연습 좀 했어? 전국노래자랑 나가서 우승하면 오열하면서 내 이름 말해 줘야지.”

“넌 댄스의 기능을 잘 주입해줬는데 자꾸 내 몸에 흡수가 안 되고 그냥 흘러, 막 흘러내려.”

 

남들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았던 우리 모둠의 수행 과제는 오히려 남들보다 늦어졌다. 하진이는 안무 숙지에 결국 실패했고, 민지는 모든 안무를 반박자 빨리했다. 성희는 갑자기 파파고로 가사를 번역하는 재미에 들려 민지가 문학적으로 번역한 가사를 조금씩 잠식하다가 하진이와 민지의 구박을 받았다. 

 

나는......나는 이상하게 카메라 앞에선 몸이 얼어 버려서 하진이보다 더 춤이 이상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될 줄 알았던 우리 모둠은 엉망진창이 되었다가 신의 손을 가진 하진이의 혼신의 편집으로 결국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룰라가 부릅니다! 3! (보단) 4! 

거친 파도에 바다처럼 때론 아픔도 왔었지만 

슬픈 바다를 감싸주던 넌 하늘과 같았어

사랑만으로 늘 가득한 밝은 미래로 가고 싶어

서로가 함께 영원히 행복하도록

나 그대 우리 모두      

 

나는 무표정한 채로 2년 가까이 지냈지만 역시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친구의 마음이 아플 때, 아주 조금 아파지려 할 때마저 먼저 알아보고 모른 체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복잡한 마음들로 내가 힘들어질까 이리저리 피하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 이젠 웃음이 좋다. 어떤 웃음이든 넓은 마음으로 바라볼 자신이 생겼다. 사랑만으로 늘 가득한 세계는 없겠지만 밝은 미래로 가고 싶다.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도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