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E-BOOK으로 보기
  • 홈페이지로 보기
ebook보기
??? ????

참사람 인터뷰

동화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고정욱(작가/새날도서관 관장)

동화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작가, 고정욱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석우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다리가 불편한 같은 반 영택이의 등학교길 가방을 들어주게 됩니다. 미안해하는 영택이와 얼떨결에 부담을 떠안게 된 석우의 어색한 첫 만남. 이후 석우는 다양한 갈등을 겪습니다. ‘찔뚝이의 부하’라는 아이들의 놀림에 발끈할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석우는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3학년이 된 첫날, 석우는 가방을 들어 주기 위해 영택의 집 앞으로 가지만 자신을 비웃는 아이들의 험담에 저도 모르게 영택이를 만나지 않고 그대로 학교에 가버립니다. 그런데 그 날, 모두가 운동장에 모인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이 석우를 부릅니다. 지난 1년간 영택을 도운 석우를 칭찬하기 위해 모범상장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석우는 어찌할 바 모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유년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된 고정욱 작가는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에 자전적 경험을 담아냈습니다. 결코 장애에 굴하지 않았던 그는 260권이 넘는 저서를 쓰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며 명실상부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세상의 편견에 보란 듯이 맞서며 ‘도움을 주는 사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긍정적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는 그를 여덟 번째 참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본업인 작가 활동 뿐 아니라 라디오 진행부터 각종 강연, 국제장애인연맹의 이사와 새날도서관의 관장님까지. 다양한 활동 영역 탓에 단순히 ‘작가’라는 호칭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가지고 계신 직함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계세요. 특히 장애를 주제로 한 아동문학 저술을 통해 대중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따뜻한 감동을 주고 계십니다."

 

Q. 평범한 사람 2~3인분에 달하는 인생을 살고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어진 24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1년 치에 가까운 스케줄을 하루 단위로 계획한 뒤, 매일매일 소화한 일정을 지워나가고 있어요. 30년째 해오고 있는 습관입니다. 정해진 일과를 소화하지 못했을 때는 자책하기도 하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시간을 알차게 꾸리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쓰는지, 어떤 방법으로 관리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본업인 작가라는 호칭 외에 다양한 직함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내가 잘 살아남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원양어업을 개척했던 동원산업의 김재철 회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업을 버리면 망한다. 하지만 본업만 해도 망한다.”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다양한 영역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와 요구에 발맞추어 계속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탄력성을 가져야 해요. 앞으로 미래 사회는 이와 같은 탄력성을 더 필요로 할 것입니다.

 

Q. 작가님은 항상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치세요. 그 에너지에 주변 사람들이 감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성과가 아닐까요? 요새 263번째 책을 쓰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500권의 책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정 영역에서 꾸준한 성과를 창출했기에 이처럼 당당함이 베어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성과가 없으면 자신감과도 거리가 멀어집니다. 일단 노력과 도전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실은 학벌, 신체적 능력, 외모와 같은 틀은 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Q. 작가님은 당당히 그 틀을 깨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남들보다 몇 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노력의 과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계셨나요?

‘간절함’입니다. 대안이 없었으니까요. 너무 많은 아픔이 있었거든요. 아파본 사람은 그 아픔을 또 겪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합니다. 세계 최고의 파이터 효도르가 평소에는 그렇게 순하고 착한 사람인데 링 위에만 올라가면 야수로 변합니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어요. “무대에 올라서 종이 ‘땡’ 하는 순간, 저는 상대방을 같은 운동선수로 보지 않습니다. 저를 가난했던 과거로 돌려보내기 위해 찾아 온 저승사자라 생각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겁니다. 현실에 굴복하면 다시 그 절망을 겪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있기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죠.

우리 모두에게는 소명의식이 있어요. 이 땅에 무엇인가 쓸모가 있어서 왔으며, 그 쓸모를 찾아 노력 하라고 말이죠. 나의 쓸모를 빠르게 찾아야 합니다. 일단 찾고 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열정이 생겨요.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생기고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주면서 항상 좋은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그럴수록 더 잘하게 되고 더 많이 하게 돼요. 놀라운 기적을 만드는 거죠. 그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노력과 열정에 있어서 임계점을 넘어가야 해요. 하지만 대부분이 그 단계까지 못 넘어가죠. 간절하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가 아닌 타인을 위해 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죠. 누구나 지금 이 순간, 스스로가 정말 자기 삶의 주인이 맞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저술 활동을 하신 작가님이지만 원래는 의사가 꿈이셨다고요.

대입 시절 의대 진학을 희망했어요. 그런데 지원하는 곳마다 받아주지 않더군요. 장애를 가진 몸으로는 실습을 할 수 없다면서요. 그래서 공대에 진학하려고 했더니 역시 비슷한 이유를 들어 입학을 반대하더군요. 생물학과, 물리학과도 매한가지였어요. 할 수 없이 문과로 진로를 바꾸고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1년은 방황의 시기였어요. 원해서 온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가진 취미와 습관이 많은 부분 국문학과와 궁합이 맞더군요. 밖에서 뛰어 놀지 못했기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책을 가까이했고 글을 쓰는 취미가 있었거든요. 이런 활동이 국문과에서는 값진 보물이었어요. 장애로 인해 가지게 된 습관이 빛나는 장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생이란 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되는 순간들이 있더군요. 이후부터는 학교를 열심히 다녔어요. 나중에는 과대표부터 대학원 진학까지 대학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다 하며 대학생활을 즐겼습니다.

 

Q. 그때 의대로 진학하셨다면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만나보지 못했겠죠. 작가님은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주목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시는데요. 유독 이와 관련한 동화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자식 셋을 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동화를 읽어주려고 살피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집필을 시작하며 소재를 고민하던 찰나, 기왕이면 이제껏 다루어진 적 없는 이야기, 남들이 쓰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바로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더군요. 장애를 소재로 하는 동화를 쓰는 작가가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없었거든요.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화책은 교육과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책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동화에서는 비교육적인 소재들이 나오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 편향된 종교 의식, 정치와 같은 것들이 있겠죠. 이런 소재들은 동화에서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특정 성향에 치우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야 말로 가장 좋은 동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쓰게 된 게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라는 작품이에요. 그 뒤로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가방 들어주는 아이>와 같은 장애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집필해왔습니다.

 

Q. 단순한 주입식 가르침보다 이야기 속에 담긴 힘을 자연스럽게 체감하는 것이 훨씬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은 평소에도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생각하시는 올바른 교육의 방향이 있으신가요?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교육은 통합교육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이루지는 교육을 말합니다. 특별한 가르침과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지만, 그 이전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 자체를 교육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교육은 결국 통합된 환경 속에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제가 만약 장애인 특별시설에 분리되어 교육을 받았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장애인들을 모르니까요. 마찬가지로 비장애인들도 장애인과 섞여서 교육받을 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다문화가족, 외국인까지 한데 섞여 교육을 받는다면 더욱 통합교육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겠죠.



 Q. 작가님이 쓰신 이야기들이 활자를 넘어 다양한 연극으로 재생산되어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애인과 연극 보러 대학로에 자주 갔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작가가 꿈인데 언젠가 내 작품이 여기에서 공연되면 좋겠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등 대학로에서 제 작품을 많이 공연했어요. 국립극장에서도 제 작품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가본 국립극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단한 곳이었는데, 오늘 날 제 작품이 그 곳에서 공연되고 있으니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며칠 전 관객들에게 인사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삼사십 년 전 이 곳에서 연극을 봤는데 이제는 내 작품을 여러분이 보고 있군요. 여러분, 꿈은 이루어집니다. 생각하는 것부터 꿈은 시작됩니다.”

 

Q. 가장 많은 인세를 기부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세요. 나눔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성공이 개인을 위한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공은 남들과 더불어 가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살 거야.’는 진정한 성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각자 잘 돼서 그만큼 자기 잘 된 걸 남과 나눌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죠. 나눔은 자기가 받은 만큼 신세를 갚는 과정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혼자서 온 게 아니거든요. 친구들이 도와주고 업어주고, 부모님이 희생해주시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시고,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움, 그리고 배려의 결정체가 저라는 한 인간을 만든 것입니다. 이제 그 결실을 열심히 나누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Q.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에도 힘쓰고 계세요.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복지 수준은 어떤가요.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정확히 중간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선진국의 장애인으로, 예를 들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떠했을까요. 미국은 워낙에 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무엇을 쟁취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라의 지원을 누리며 안정된 삶을 살았겠지만 지금과 같은 결과물은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복지환경이 열악한 나라, 이를테면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교육조차 받지 못했을테죠. 한국에서 태어난 건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복지 선진국도 아니면서 절대적인 빈곤국도 아닌, 발전해 가는 상황 속에서 교육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제가 태어났을 당시 우리나라는 교육은 중시했지만 복지에는 무관심했어요.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나라에서 제가 태어나서 절묘하게 선진복지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거죠. 유년시절만 해도 장애인 주차장이 없었어요. 많은 장애인들이 오랜 세월 싸우고 투쟁한 결과물입니다. 장애인이 면허를 따거나 자동차 운전을 하는 일도 예전에는 흔치 않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결혼 후에서야 조금씩 얘기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90년대 초부터 운전면허를 주기 시작했고, 저는 92년도에 취득했어요. 사회발전을 견인해가는 역할을 저를 포함한 많은 장애인들이 애 써주었지만, 또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에 올라탔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멉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제가 계속 싸우고 도전할 일이 많이 있는 거죠. 장애는 타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문제예요.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사고 또는 노화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기반이 되었을 때 장애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제가 장애인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믿습니다. 흔히들 소명이라고 얘기하죠. 이 땅에 온 이유. 장애를 가진 작가로서, 글과 말과 행동으로 복지가 실현되는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Q. 희망하는 세상, 바꿔나가고자 하는 사회상이 있으신가요.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물론 완벽한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조금씩조금씩 지금 이 순간을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헨리 포드가 말했어요. “진정한 성공은 내가 오기 전의 세상보다 내가 떠났을 때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포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 상류층만 이용할 수 있었던 그 비싼 자동차를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들었으니까요.

 

Q. 마지막으로,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혼자서만 누리는 삶이 과연 의미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생은 햄 앤 에그란 말이 있습니다. 돼지가 자기의 살을 희생해 햄이 되고 닭이 달걀을 바쳐 식탁을 풍성히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배려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그들의 희생과 협조 없이 저는 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 또한 누군가의 햄과 에그이어야만 하고요.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이고,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참사람이 아닐까요.



 

글 : 참사람 서포터즈 이호성/한지호

사진 : 교보교육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