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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그녀의 손

글 : 최란(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6번째 편지 

그녀의 손

 

: 최란(참사람 독자)

 

 

그녀에게 전화가 온 날은 지루했던 비가 그치고 반짝 해가 돋아난 날이었다. 내가 머물고 있던 지역은 늦은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비가 내렸다. 그러다 오후 3시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잠시 햇빛이 쏟아지던 곳이었다. 그럴 때면 그 햇빛은 유난히도 맑고 따스해 해를 보지 못하는 날이면 더 그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해 봄은 유난히도 해가 좋은 날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해가 많이 뜨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니까 그 봄, 내가 생각지도 못한 봉사모임을 스스로 나가게 된 것은 어쩌면 햇빛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고 정신없이 보낸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칠년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남편과 단 둘이 두 아이를 키웠다. 먹이고 씻기고, 가끔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르며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두들겨 가며 정신없이 보낸 지난날 이었다. 서툰 육아가 그렇듯 홀로 감내하며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알아갔다. 그러느라 나는 내 주변을 돌볼 여력도 마음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안정된 이민생활이었다.

하지만 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직 가정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옮겨 심은 화초처럼 새로운 땅에 적응하기 위해 내 모든 사랑과 관심은 가족만을 향해 맞춰져 있었다.

 

둘째 아이가 공립학교에 입학을 할 즈음, 어느 날 봉사 모임을 찾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영어회화 실력을 위해 소규모 모임들에 참석 하고는 했다. 미국 교회에서 하는 종교모임부터, 독서모임, 뜨개질 모임 등이었다. 사실 그 모임이라는 것이 막상 참석해보면 나 같은 외국인들은 대부분 영어가 목적인 이유였기에 또 그만큼 모임의 지속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각종 랭귀지 코스를 다니다 보면 결국 실력향상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러고 나면 다음 코스는 지역사회의 모임이었다.

나 역시 영어 회화 실력을 더 늘리고 싶은 마음에 평소 관심에도 없던 봉사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주 일에 한 번씩 지역 노숙자 센터를 찾아가 점심을 제공해 주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임에서 같은 한인의 미스 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한눈에 내가 한국임을 알아보았다. 나 역시 미스 리가 자신을 소개하기 전부터 한국 사람임을 알아챘다. 그녀는 이민 온지 20년이 지났고, 남편은 미국 사람이라고 했다.

근데 왜 미스 리 세요?”

응 난 그냥 남편 성 안 따랐어요. 나는 원래 내 성이 좋아서요.”

 

오랜 시간 미국에 살았어도 자신의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꾸지 않은 그녀가 나는 왠지 대차 보여 단박에 마음을 뺏겼다. 그녀는 이 봉사모임에 함께 한지 벌써 이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크고 잘 웃었는데 그만큼 손도 빨랐다. 노숙자들의 점심을 만들기 위해 모일 때면 그녀가 만든 샌드위치의 양이 항상 제일 많았다. 열 명의 봉사자들은 노숙자 센터에서 제공하는 재료로 점심을 만들었다.

 

그리고 완성된 음식들을 가지고 센터로 가 노숙자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었다. 나는 미국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았음에도 노숙자를 직접 대면해본 기억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하다 보니 길을 걸을 일이 별로 없었다. 운전을 하다 노숙을 하는 사람들을 차 속에서 본적은 있어도 가까이 곁에서 음식을 나누어 주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처음 미스 리를 따라 봉사를 나가던 날,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젊은 사람들이 끼니를 굶고 있었다. ‘미스 리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도 깍듯했지만 젊은 노숙자들을 대할 때면 더욱 조심스러워 했다. 젊은 혈기에 혹시나 그들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자신도 모르게 얼굴빛에 동정심이 드러날 까 늘 신경을 썼다. 샌드위치를 받아가는 그들에게 건강은 어떤지 묻고 음료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미스 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젊은 나이의 그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들의 포기 한 듯한 생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났다. 봉사를 하러 나온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다.

 

아니 저들은 어쩌자고 저 귀한 젊음을 이토록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어쩌면 내 머릿속에는 분명 저들은 중독자임에 틀림없다.’라는 편견이 차 있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이었다. 나는 젊은 그들이 다 중독자로 보였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구제불능으로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봉사를 하고자 했던 내 마음은 어느새 싸늘히 식어갔고, 중독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웃으며 음식을 건네는 미스 리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겨우 세 번 모임을 나간 후 더 이상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센터에 통보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나는 내 머릿속에서 봉사와 미스 리를 지웠다.

 

그런데 그 미스 리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센터를 통해 내가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뜻을 비췄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모임을 나오게 되어 불편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나는 그녀를 한 달 만에 근처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다.

 

봉사가 많이 힘들었나요?”

아니요, 생각보다 시간 내기가 힘들어서요.”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을 말끔한 얼굴로 해 내는 내가 스스로도 가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중독자들의 피폐한 삶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정 봉사를 하고 싶으면 근처 도서관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 챈 듯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나도 사실 아직 이곳에서 봉사한 지 이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다보면 생각보다 사람은 별 것 아닌 계기에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껴요.”

 

그녀는 그러며 얼마 전 노숙자 센터에 기거하다 정신을 차려 재활센터에 들어가 새로이 인생을 시작하는 어느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이미 십대에 한 번 출산 경험을 한 여자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앳되어 보였지만 눈은 온갖 시련들을 다 겪은 것 마냥 나이든 노인의 눈을 하고 있었다. ‘미스 리는 자신의 딸과 비슷해 보이는 그녀가 안쓰러워 노숙자 센터에 갈 때 마다 더 많이 웃어주고 음식도 더 챙겨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샌드위치를 받아가는 그녀의 손목에 무수히 많은 자해의 흔적들을 보았다고 한다.

 

그 어린애가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모질게도 자신을 그렇게 해 했겠어요.”

미스 리는 그때부터 그녀를 만날 때면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 너의 부모님도 어디선가 너의 손을 이렇게 꼭 잡아주고 싶을 것이라고 말 해줬다고 한다.

 

나는 단지 그렇게만 해 줬을 뿐인데... 그 아이 그 센터를 떠나며 제게 말하더군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나도 중독자들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무섭고, 못할 것 같았는데 겪어보니 그냥 그들도 인생이 뜻하지 않게 잘 안 풀린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대부분이고, 사실 봉사라는 것도 엄청 큰 결심이 서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저 그냥 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 한 것 같아요.”

 

미스 리는 이야기를 마친 후 손을 뻗어 커피 잔을 쥐었다. 나는 음식을 만들 때면 손이 엄청 빠르고 화통하게 웃을 때면 늘 손뼉을 쳐 대던 미스 리의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갈 곳 모를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다독여 주었을 손, ‘미스 리의 손, 그 손 앞에 테이블 아래 숨어 있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