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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참 방향으로 가는 길

글 : 한승희(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22번째 편지 

참 방향으로 가는 길

 

: 한승희(참사람 독자)

 

 

세상에 참사람이란 단어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참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 거짓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이 어디쯤에 내가 있는지 영락없이 들통이 난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세상에 참사람은 있다. 나는 내 인생을 바꾼 한 친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처음 이 친구를 만난 것은 내 나이 38,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무역 회사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었다. 첫아이가 여덟 살이 되자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국제학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그리고 같은 반 학부형으로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와 동갑인 이 친구에게는 딸이 셋인데, 그중 둘째 딸이 우리 첫째 딸과 같은 1학년이었다. 같은 반 어머니회 활동으로 우리는 자주 만나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회 활동은 순전히 아이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달랐다. 본인의 딸보다는 언제나 반 전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 학교이다 보니 학부모들의 봉사가 필요한 상황이 많았다. 어머니회 일이 많아지거나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게 될 때에도 불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힘들고 귀찮은 일이 있을 때는 본인이 앞장서서 그 일을 맡았다.

 

친구는 반에서 소외당하거나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외국에 있는 한인학교 특성상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외국인인 아이들이 상당수이다. 그 아이들 대부분 받아쓰기나 시험 준비를 힘들어한다. 심지어 기본적인 준비물도 잘 챙겨오지 못했다. 친구는 한국어 알림장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매번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 알림장을 단체 방에 올렸다. 받아쓰기나 학교 시험 정보도, 행사 준비도, 준비물도 모두 단체 방에 올라왔다. 힘들어하는 엄마와 아이들을 위해서 늘 도움 될 것을 찾았다. 가끔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본인이 직접 준비물을 챙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은 본인이 볼 수 있는 것만을 보기에 나는 그런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모르는 아이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더니 곧장 달려가 상처를 닦아주고 양호실에 데려가더니 엄마를 찾아 주었다. 어느 날은 반에 장난기 있는 남자애들 둘이 학교 수도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온몸이 홀딱 젖으니 어디선가 체육복을 구해와서는 닦이고 입혔다. 그런 작은 사건들이 이어지니 나는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의아함을 느꼈다. 도대체 웬 오지랖인가 싶어 물으니 친구가 웃으며 하는 말. 그냥 어렸을 때 내가 이런 관심 받아보고 싶어서 그런다. .

 

친구는 늘 바빴다. 월화수목금토일. 하루하루의 스케줄이 가득 차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려는 친구는 악기도 두어 가지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다. 하루는 새로운 악기를 배우고, 하루는 노래를 배운다. 하루는 지금도 수준급인 인도네시아어를 더 배우고, 다른 날은 인도네시아 빈민들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에 나간다. 한국 교민 중에 곤란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기꺼이 나서서 돕는다. 친구는 나이가 들면 인도네시아에서 선교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친구.

 

사실 친구의 인도네시아어 수준은 거의 원어민에 가깝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더 배우고 공부한다.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열린 마음으로 배운다. 옆에서 지켜보다 핀잔을 주었다. 그 정도로 잘하면 됐지. 뭘 더 잘하려고 그러냐. 친구가 하는 말. 넌 배우고 싶을 때 배웠잖아. 난 그걸 못해서 공부하는 게 너무 좋단 말이야.

 

 

처음에 친구를 바라보던 의아한 눈빛은 친구의 한결같고 진심 어린 행동에 점차 사라졌다나중에는 진심으로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속으로 존경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친구를 보고 있자면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대답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결국 사람은 사...사는 것이다친구를 바라보며 내가 얻은 결론은 '사랑의 범위'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보통 사람들은 나와 나의 부모나의 배우자나의 자식을 소중히 여긴다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남을 외면하고 짓밟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그러나 친구는 소중히 여기는 범위가 보통의 범위보다 훨씬 넓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친정집을 물었다. 친구는 어렸을 때 사고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친정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모네 집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모네 집에 어린 사촌들이 있어 도움이 되며 있었던 듯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곧장 간호사로 취업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인도네시아에 왔다고 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컸다고?”

그치? 나 잘 컸지. 나 나중에 부모님 만나도 괜찮겠지.”

하며 뿌듯해하는 친구.

내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 언니 동생까지 평범한 관심과 평범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대학도 다녔고, 직업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평범'이란 단어가 이토록 큰 의미인지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몰랐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것 하나 없이도 이처럼 잘 컸다니,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본인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려는 마음. 나는 그 친구를 만나고서 그때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 내가 유난히 이기적이거나 못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에 가까웠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인.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내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참지 못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수평선 왼쪽에 거짓, 오른쪽에 참을 써놓고 나를 세운다면 중간쯤에 주춤주춤 서 있었을 나. 참도 거짓도 아닌 그곳에서 나는 나와 내 아이, 내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을 외면하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정말 많이 바뀌었다. 우선 참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쪽으로 가고 싶어 노력하게 되었다. 참인간. 이란 낱말이 사전에 있다면 뜻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세상에 더 좋은 가치를 심어주는 사람?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내가 꼽고 싶은 것은 주위 사람들 모두 참인간을 닮고 싶어 노력하게 하는 사람.' 이다. 그 친구를 보고 닮고 싶어 노력하는 나처럼 말이다.

 

시간이 흘러 주재 기간이 끝나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나는 학교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거리낌 없이 맡아서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놀라는 눈치다. 그걸 왜 하는데? 그걸 한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내 주위에는 참도 거짓도 아닌 곳에서 주춤대는 사람들이 꽤 되는지 저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냥,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의 답변은 늘 저 정도이다. 이 정도 일을 한다고 내가 갑자기 참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옳은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의 생의 뒷부분에는 참인간에 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아주 조금씩이라도 참 방향으로 내딛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