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E-BOOK으로 보기
  • 홈페이지로 보기
ebook보기
??? ????

참사람 인터뷰

기술을 통해 ‘느린 학습자’의 교육 격차를 해소해나가는 사람

홍창기(H2K 대표)

“<기술>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한 고민의 끝에 그가 도달한 결과는 다름 아닌 ‘교육’이었습니다. 

 

난독증 또는 경계선 지능 어린이들이 한글을 배우며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스타트업 H2K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소리중심 학습법과 딥러닝 테크놀러지가 접목된 교육 어플리케이션 <소중한글>을 개발하여 효율적인 학습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홍창기 대표입니다. 

 

소중한글은 출시와 동시에 그 효과성을 인정받고 앱스토어 올해의 앱 수상, KERIS 에듀테크 해커톤 최우수상 등을 거머쥐며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홍창기 대표를 만나 참사람의 가치를 들어보았습니다.

 

‘교육 나눔’이라는 불씨

연구실 책상 앞에 앉은 청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과 비례하여 진로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갔다. 카이스트 전산학부를 거쳐 박사과정을 진행 중이던 홍창기 대표, 그가 앞날을 낙관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가슴 속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 탓이었다. 

 

“저 또한 학교를 비롯해 여러 기관이 제공하는 교육 혜택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받았던 것들을 다시 사회와 나눔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이러한 다짐은 우연히 교회에서 만난 친구, 향후 H2K를 함께 설립하게 되는 김우현 공동창업자를 만나며 더욱 강해졌다. 둘은 우정과 생각을 교류하며 점차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나갔다. 생체 분석을 위한 빅데이터와 로봇 공학, AI를 연구하던 이들은 도대체 어떤 연유로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한글 교육 서비스를 생각하게 되었을까?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전 세가지 뚜렷한 원칙을 정립했어요. 하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이어야 한다. 둘, 아직 누구도 풀지 못한 문제여야만 한다. 셋,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이어야 한다. 이 원칙에 부합하는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살펴보았고, 그 과정에서 난독증 어린이를 비롯한 느린 학습자가 겪는 어려움을 알게 되었죠.”

 

2016년도 교육부 표본조사에 따르면 한글 난독증을 겪는 어린이가 전체의 4.2%에 달했다. 난독증 이외 한글을 또래보다 늦게 배우는 아이들 또한 약 20%. 홍대표는 공교육이 가진 한계에 주목했다. 일대다의 집체교육에서는 한글을 익히고 온 다수의 학생들 중심으로 수업이 전개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한글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교과목을 배우는 일은 어불성설, 결국 학교 수업 전반을 따라가지 못하고 방치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공교육 시스템은 느린 학습자가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격차가 벌어지지 않게 가능한 빨리 한글을 깨우쳐야 하는데, 효율적인 학습 방법에 대한 연구도, 실천도 모두 부재한 상태였다. 그는 소명의식을 느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가 잇따랐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에는 지나치게 좁은 시장이었고, 한글 교육 문외한이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꼬리표처럼 붙었다. 하지만 홍창기 대표는 당장의 수익성 대신 사회에 필요한 서비스 개발을 통해 환원하고 싶다는, 다소 무모하고도 순수한 열정에 자신을 맡겼다. 문제정의가 명확하다면, 도전해볼만한 사업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정공법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희 또한 처음에는 소위 ‘공돌이들이 만드는 서비스’이다 보니, 실제 교육효과가 있을지 확신이 없었죠. 시장에 내놨을 때 아이들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았고요. 검증을 위해 특수교사 스무 명을 모집해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들과 소통하고, 효과성을 체크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끝에 확신을 얻었고, 드디어 2018년 한글날에 무료로 앱을 런칭하게 되었죠.”

 

 

‘난독증 어린이’라는 좁은 시장에 대한 우려 역시 딥러닝(Deep learning)에 기반한 AI 기술이 실마리가 되었다. 두 대표의 전공분야였다. 학습자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해지며, 더 폭넓은 관점으로 타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는 경계선 지능과 다문화 청소년을 비롯한 느린 학습자 전반, 나아가 KPOP을 통해 한국어 관심을 가진 외국인까지 한글 교육에 관심 있는 계층 모두를 위한 서비스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소중한글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나들며 교육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맞춤형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며, 현재는 그 이용자만 20만 명에 달한다.

 

 

소리중심 교육법에 대한 확신

코로나19가 심각했던 2020년의 대구, 관내 초등학교들이 발 벗고 나서 소중한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중한글이 가진 독특하고도 효과적인 학습법이 교사들에게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소중한글은 국내 최초로 ‘파닉스 교육법’을 학습 시스템을 접목했다. 모음과 자음을 분리하여 가르친 후 이를 소리 내어 읽고 조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모든 문자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법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타 학습법 대비 4배 이상의 교육 효과가 있다는 연구논문과 다각도의 검증이 완료된 방식이다. 

 

“황당했어요. 한글은 알파벳보다도 훨씬 체계적인 표음문자라서 파닉스 교육법을 접목했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어느 시장을 가도 실천 사례가 없는 거예요. 특히 느린 학습자와, 교재를 접하기 어려운 저소득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더욱 효과적인데도 말이죠.”

 

 

기존의 주류 한글 교육은 그림 카드를 활용한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고무’라는 단어를 익힌다면 여러 장의 카드를 통해 ‘고’와 ‘무’의 생김새를 유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이 가능하려면 특정 수준의 지능과 언어감각을 갖추어야 하는데, 발달장애 어린이들의 학습능력으로는 추론이 어려웠다. 또한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한 교재를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 역시 이러한 교육방식에서 소외될 확률이 높았다. 현장 중심으로 소중한글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가 이어지며 일선 초등학교 등 공교육 기관의 교구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점차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생존의 비결은 ‘사람’

회사를 운영하며 가장 가슴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홍대표는 뼈아팠던 기억 하나를 회고했다. 대부분의 신생 스타트업이 그러하듯 H2K 역시 경영상의 어려움과 마주한 시기가 있었다. 월급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팀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어렵게 얘기를 꺼냈지만, 오히려 위로를 보태고 의지가 되어준 것은 팀원들이었다. 

 

“당장의 금전적 보상보다는 우리가 개발하는 이 서비스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그러니 저희는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더군요. 회사의 비전에 공감해주는 팀원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움을 나누었던 팀원들은 오늘까지도 함께하며 소중한글에 대단한 애착을 자랑하고 있다. 홍대표는 매 순간 고난을 겪는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회사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솔직하게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고, 동료들이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문화기반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사실 누구나 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걸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는 개개인이 가진 강점에 더욱 집중하여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은 약할 수 있지만 이들이 하나로 뭉쳐 각자의 강점을 발휘한다면 그 누구보다 강력한 팀이 되는 거죠. 이러한 가치관을 하나의 조직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6가지의 강점역량을 구분하고 팀원들이 이를 발휘했을 경우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H2K의 핵심 DNA는 사회적 가치

무료로 서비스를 시작했던 소중한글은 몇 해 전 유료화라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도 많은 부침과 논쟁이 이어졌다. 다수의 느린 학습자가 저소득 가정인 상황에서, 이들 계층이 지불하기 어려운 서비스는 회사의 비전과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반드시 수익을 도모해야만 했다.

 

H2K는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 한부모 가정의 자녀 등 소외계층에 한하여 소중한글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찾았다. 또한 주기적인 나눔 캠페인을 전개하여 일반 소비자가 구매하는 수량만큼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홀트아동복지 등에 프로그램을 기부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 소중한글을 제공해온 역사는 설립초기부터 이미 오래된 일이다. 홍대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H2K의 정관 상 기업 목적란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있어요. ‘우리는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회사이다.’ 절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저희 핵심 DNA입니다.”

 

교육 나눔이 창업의 시작이었던 만큼 소외계층을 향한 대표의 생각은 변함없이 굳건하다. 

 

 

그가 꿈꾸는 내일의 교육

오늘 날 각광받는 연구 분야와 독보적인 기술을 간직한 그에게, 굳이 창업으로 고생했던 기억들이 후회되지는 않는지 넌지시 묻자 홍대표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도 그런 후회를 하지는 않았어요. 세상에는 돈보다 귀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에게는 그 가치가 바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거든요. 오랜 기간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삶을 살았지만 이 시기 배운 것보다 창업을 하며 얻은 지혜가 훨씬 많아요. 무엇보다 ‘사람’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었어요. 짧은 기간 동안 농밀하게 타인과 사회를 알아가는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망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연구실 안보다 연구실 바깥에서 더 많은 지혜를 얻었다는 그, 홍창기 대표가 꿈꾸는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일까?

 

“‘저희가 만드는 서비스는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해주십시오.’ 조직 구성원들에게 가장 많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저의 운영 철학은 간단합니다. 우리 아이가 쓸 수 있는 제품, 우리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자고 매번 이야기해요. 소중한글을 지금보다 더욱 더 고도화시켜서, 정말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교육시장이 가진 문제점을 우리가 가진 기술로 혁신하고 싶은 포부가 있습니다.”

 

홍대표는 미국의 공교육 사례를 전하며 국내와의 차이점을 귀띔했습니다. 엘리멘터리 스쿨(elementary school)에 입학하면 첫해는 무조건 파닉스 교육법 중심의 영어 커리큘럼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알파벳을 완벽하게 익힌 다수보다 아직 읽고 쓰기가 안 되는 소수의 느린 학습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수업이 진행되는 것에 경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배리어프리가 잘 구현된 사회시설을 포함하여, 교육 역시 소외되거나 뒤처지는 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돌보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의 교육에서, ‘빨리빨리’ 대신 ‘천천히, 단 효율적으로’, ‘함께, 더불어’의 문화를 이식하고 싶다는 홍대표. 길지 않은 시간 그가 쌓아올린 성과들을 살펴보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