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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민지꽃’을 아시나요?

글 : 정미영(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9번째 편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민지꽃'을

아시나요?

 

: 정미영(참사람 독자)

 

 

저는 오늘 제 마음 속 깊이 소중하게 꽃 피어 있는 민지꽃이야기를 해 볼게요.

3월초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아침에 출근했을 때, 제 자리에는 연분홍빛 작은 꽃묶음과 커다란 보온병이 놓여 있었어요. 쪽지와 함께요.

선생님, 꽃병의 물은 제가 날마다 와서 갈게요. 보온병에는 옥수수수염차가 들어 있어요. 신장에 아주 좋대요. 선생님.”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도 모른 채로 저는 작은 유리병에 꽂혀 있는 꽃을 다른 선생님들도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올려놓았고, 옥수수수염차를 하루 종일 따뜻하게 마셨답니다. 그런데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와 보니 보온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다음날도 책상엔 어제의 그 보온병에 따뜻한 옥수수수염차가 놓여 있었고, 꽃병의 물을 갈고 갔는지 꽃병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또록또록 맺혀 있었어요. 종례 시간에 내려오면 보온병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고요. 그렇게 해서 보온병의 주인도 꽃병에 꽃한테 물을 주러 오는 범인도 모른 체 많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초여름에 학교 행사가 있어 준비하려고 아주 일찍 학교로 출근했어요. 그런데 교무실 옆 화장실에서 민지가 자기를 빼 닮은 연분홍빛 작은 꽃묶음과 유리병을 들고 나오는 거예요. 드디어 저는 보온병 사건의 범인을 잡은 거지요. 민지는 저를 보더니 깜짝 놀랐어요. 그 뒤로도 그 범인은 옥수수수염차를 담은 보온병을 1년 내내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어요. 그것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요. 그때부터 저와 선생님들은 책상 위, 화병의 꽃을 민지꽃이라 불렀답니다.

 

 

저는 그 당시 동생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얼마 안 된 지라매우 지치고 몸이 무척 힘든 상태였는데, 그 녀석 덕분으로 거뜬하게 버티고 이겨 낼 수 있었답니다. 민지는 1년 동안 우리 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친구들 생일도 편지랑 선물이랑 엄마처럼 챙기고 또 모든 친구들을 잘 배려하곤 해서 우리 반 친구들은 민지를 아주아주 좋아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민지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명덕외고 중국어과에 합격하여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지요.

 

저는 다음해에도 중3 담임을 맡았어요. 새로운 아이들이 진급해 올라왔는데, 효준이란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기 힘들 만큼 성적이 안 좋았어요. 학원도 안 다녔고요. 그래서 저는 효준이를 고등학교에 입학시킬 계획을 긴급하게 짰답니다.

효준이를 고등학교에 보내려면 한 과목이라도 열심히 해서 90점 이상이 나오게 해야 한다. 쉬운 과목 또는 새로 배우는 과목을 매진하게 해야지. 중국어를 처음 배우니까 중국어 과목에 승부를 걸자.’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중국어과에 다니는 민지를 떠올렸답니다. 민지한테 전화를 했더니 민지는 흔쾌히 대답했어요.

, 네 선생님, 열심히 가르쳐 볼게요.”

그렇게 해서, 민지는 주 2회씩 명덕외고 수업이 끝나는 대로 우리 반 교실로 와서 중국어를 가르쳐 줬어요. 효준이는 예쁜 누나가 친절하고도 재미있게 가르쳐 주니 민지를 친누나처럼 잘 따랐고, 민지가 숙제를 내주면 숙제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해서 중국어 과목 성적이 1, 2학기 모두 90점 이상이 나왔고, 고등학교도 거뜬하게 합격했어요. 효준이 졸업식 날, 민지는 멋진 책가방과 편지를 효준이한테 선물로 주어 효준이 얼굴엔 함박웃음이 번졌네요.

 

여기까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런 제자 민지꽃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스런 민지꽃과의 추억엔 더 많은 사연들이 꼭꼭 숨겨져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할게요. 대학생이 되어서는 알바해서 돈 벌었다고 올 겨울 제 생일에 아이보리색 패딩점퍼를 사 가지고 달려 온 것은 절대 비밀, 비밀로 할게요.

 

오늘 아침, 몇 년 전 민지를 처음 만나던 삼월 그때처럼 꽃샘추위가 무서운 날, 저는 아이보리색 패딩을 포옥 따뜻하게 입고 길을 나섭니다. 마음속에 민지꽃이 화안하게 피어납니다. 저도 민지꽃처럼 세상을 화안하게 밝히려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