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지금은 할 수 있는 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04번째 편지 

지금은 할 수 있는 말

 

글 : 김태란(참사람 독자)

 

 

나의 한 걸음이 너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매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어.”

 

이 말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센터장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저는 한 부모 가정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의 집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집안 분위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해주신 게 정00, 이00센터장님 부부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초등학교 시절, 스트레스를 받으면 문구점에서 도둑질하였습니다. 그걸 알게 되신 센터장님 부부께서 개인 돈으로 제가 훔친 물건 값을 모두 변상하시고, 직접 찾아가 사과를 하셨습니다. 저에게 잘못된 것을 알려주시고 더욱더 사랑으로 보듬어주셨습니다.

 

이 계기로 인하여 저는 센터장님 부부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고, 진짜 친 부모님처럼 따랐습니다. 저와 함께 센터를 다닌 친구들 모두 센터장님 내외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다른 센터와는 확연한 차이가 날 정도로 저희는 지원받는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센터를 다니는 모든 친구들이 악기를 배울 수 있었고, 음악을 전공으로 택하여 꿈을 찾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뮤지컬, 연극, 오케스트라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보러 다니며, 문화 활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센터장님은 엇나가는 아동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센터에서 건강한 밥을 챙겨주셨고,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센터장님께서 쉬지도 않고 돌아다니시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저는 센터장님께 선생님, 조금 쉬면서 하세요. 힘드시죠?”라고 너스레 떨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센터장님께서는

힘들지. 선생님도 쉬고 싶어. 근데 선생님이 한 걸음 더 걸어서 지원을 알아보고,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너희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 너희가 더 웃을 수 있고, 너희한테 더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선생님은 쉬지 않고 달릴 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하기 싫어하던 것들이 다 선생님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만약 센터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플루트라는 악기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서볼 수도 없었을 것이고, 스키도 타보지 못했을 것이고, 다양한 사람과 여러 가지 경험을 하지도 못한 채 도둑질을 하며 저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을 테지요.

저는 그 뒤로 더욱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아직 이룬 것은 없지만 저는 앞으로 계속하여 나가고 있고, 저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센터장님께서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편찮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백혈병과 다른 병들로 돌아가셨습니다. 센터장님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함께 모여 센터장님의 가시는 길을 지켰습니다. 센터장님께서 병과 싸우고 계실 때, 기억을 점점 잃어가셨습니다. 그때도 저희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저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저는 센터장님께서 평생 저와 함께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늘 보답하는 걸 미루며, 제대로 된 감사 인사와 보답 한번 못 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버티기 힘들고 슬플 때 센터장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들이나 저에게 주신 사랑으로 버티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리쳐서 말할 수 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말하기 힘들었는지, 센터장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센터장님의 은혜에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 부모님이 채워주시지 못한 사랑을 과분하게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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