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나의 '킴'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06번째 편지 

나의 '킴'

 

글 : 최안나(참사람 독자)

 

 

. 영어 이름 킴벌리혹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씨가 아닌, 이름 그대로 ''40대 중반의,끊이지 않는 웃음과 넉살 좋은 호주 아줌마입니다.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줄 알고,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며 일하는 그녀를, 같이 일하는 셰프들 대부분은 그냥 '성격 좋은 아줌마혹은 조금은 무례한 태도로 대했어요.그런데도 그녀는 늘 웃으면서 본인 일을 즐겁게 좋은 기운으로 열심히 해냈고, 팀 내에서 승진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누구에게나, 늘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항상 손 내밀고 진짜 도움을 줄 줄 아는 킴. 그녀는 주방에서 일하는 다른 파트의 직원들이 어려움이 있으면 직접 가서 해결해주며, 상사들의 이견 조율이 어려운상황에도 그녀 특유의 밝은 기운으로 회의 분위기를 화기애애 잘 마무리 지어 일을 기한에 맞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마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아주 바쁜 시기에도, 그녀는 자기 미소 만큼 밝은 노란 스마일 모양, 초콜릿, 감자튀김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출근길에 따뜻한 커피를 사 와, 5분이라도 동료들이 커피 한잔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듭니다. , 그녀는 추가로 팀원들에게 도움이 될 레시피나 문서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팀원 모두 함께 소통하며 일을 했고, 그와 동시에 점점 그녀가 만드는 메뉴들의 완성도 또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면서 저는 그녀, 킴이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흔한 장롱 면허도 없는 저는, 넓은 호주 땅에서 낑낑거리며 무거운 도구 박스를 들고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학교와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저를 위해 킴은 언제부턴가 제 운전기사를 자청합니다. 그녀는 그저 '너희 집이랑 우리 집이랑 별로 멀지도 않고, 나 운전 진짜 잘해.'라고 했지만 저는 좀 더 가까이 그녀의 일상을 엿보며 그녀에게 더 감동하게 됩니다.

매일 새벽 3시 반,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크로와상 기술을 좀 더 익히기 위해 친구가 하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출근을 했고, 짬짬이 본인의 사비를 들여서 다녀온 수업에서 배운 기술이나 레시피를 아낌없이 공개하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쉬는 날이면 킴은 친구들이나 가족 행사를 위한 특별한 케이크나 음식을 완벽하게 준비하며, 출산휴가를 가는 직원들에게는 직접 장소를 꾸며 작은 파티를 해주기도 하고, 아무리 힘들고 바쁜 날이여도, 퇴근길에서만큼은 케이팝을 무척 좋아하는 그녀의 예쁜 딸과 함께 차 안에서 한국 아이돌 음악에 몸을 흔들 줄 아는 그녀. 그렇게 그녀는 승진하고 1년이 채 안 되어, 그녀는 조직 내에서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본사의 윗사람들에게까지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녀와 3년 내내 일했던 동안, 저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함께한 순간이 빼곡하게 쌓여 타지에서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저를 지탱해주는 일상을 만들 수 있었어요. 서로 좋아하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 병씩 사다 주기도 하고,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킴의 딸을 위해서 저는 명절 때면 모둠전과 김치부침개, 만두 등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곤 했어요. 정치도 못 하고 마음이 여린 제가 걱정되었는지 '누가 너를 괴롭히면, 이렇게 욕을 해줘'라며 호주 욕을 가르쳐주던 킴. 다른 팀원들에 비해 경력이 부족한 저에게는 시간을 들여 도구 하나라도 제대로 쓰는 법을 알려주고, 제 생일 때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셰프가 되라며 저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사주었어요.

 

 

 

, 타지에서 혼자 돈을 벌어서 학교 다니고 열심히 일하는 게 기특하다며 제 졸업식이 있던 주에는 저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해 주었지요. 제가 상사들에게 왕창 깨진 날에는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푹 자라며, 조금 더 일찍 집에 보내주기도 하는 그녀의 배려 덕에 저는 조금씩 윗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큰 프로젝트들이나 VIP 행사에 상사인 그녀와 함께 담당자로 참여를 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다른 도시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얼마 후, 킴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저는 연말에 한국에 갈 계획이 생겨서, 지난번처럼 킴의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굿즈를 사 갈까 싶었는데 다른 동료에게 들었던 킴의 건강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어요.

 

"다른 항암치료를 계속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나에게 효과가 없었어. 나는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날들을 즐기려고 해. 지금은 집 앞 작은 정원에서 음식에 쓸 채소를 가꾸며 일을 하고 있어..(2020829, 킴이)"

 

킴의 긴 메시지에는 늘 그녀의 여전히 밝고 쾌활하며 긍정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는데, 저는 자꾸 눈물이 앞을 가려서 며칠 뒤에야 그녀에게 답을 보낼 수 있었어요. 늦게나마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밝고 좋은 기운을 줄 작은 선물과 카드를 고르던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저와 킴과 함께 일했었던 한 직장동료가 메시지를 보냅니다. ‘킴이 며칠 뒤에 우리를 떠날 것 같아.’ 얼마 뒤 킴은 그녀만큼 환하고 예쁜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에 마지막 인사를 하며 떠났습니다.

 

가끔 집에서 김치전을 할 때면 전을 뒤집다가 눈이 그렁그렁 해지곤 합니다. 바삭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을 좋아하던 킴을 위해서, 베이컨도 넣고 바삭함이 살아있게 만들었던 김치전을 정말 자기에게 맞춤형 팬케이크'라며 어린아이같이 좋아했던 킴이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직접 김치를 만들어 보겠다며 김치라는 제목의 책을 펼치며, 배추 두 포기와 각종 야채가 든 장바구니를 낑낑거리며 갖고 왔던 그 모습이, 아무리 바빠도 계절이 변하는 것은 보아야 한다며 우주선같이 생긴 패션 프루츠 꽃이나 각종 베리를 본인의 집 정원에서 두 손 가득 따와서 저에게 냄새를 맡아보고만져보라며 건네주던 그 손의 온기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따뜻한 웃음을 힘들거나 지칠 때 생각해봅니다.

걱정 마, 우리 함께 해보자. 할 수 있어!’ 라고 했던 늘 밝고 힘찬 그녀의 목소리를 저도 누군가에게 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또 한 계절을 이렇게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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