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I can speak english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08번째 편지 

I can speak english

 

글 : 김경식(참사람 독자)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경추가 손상되어 25년째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이 되었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외출도 하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TV를 자주 봤는데 연예인이 유창하게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데 도무지 나는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화면 아래에 한글자막이 표시되었으나 금방 사라져 답답했다. 나도 영어를 배워서 한글자막 없이 외국영화도 보고, 외국인과 대화하고 싶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김천평생교육원에서 생활영어를 접수받는 것을 보고, 빈자리가 남아있어 신청을 하였다. 문화센터보다 수강료가 저렴하고, 수급자증명서를 제출하면 수강료가 면제되었다. 활동보조인 선생님이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휠체어에 태워주어 예약한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수강생들이 다들 웃는 얼굴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평균연령이 50대 중후반으로 취미로 영어를 배우거나 외국여행갈 때 사용하려고 배웠다.

 

선생님이 수업교제를 단체로 구매하여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나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선물로 주셨다. 영어책 한권을 구입하면 일 년 동안 배운다고 하였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 멘붕이 왔다. 기초적인 것을 배울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다들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영어를 배웠던 사람들은 내공이 쌓여서 원어민 음성파일을 듣고 술술 따라서 말하는데 나는 귀가 틔지 않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잔뜩 주눅이 들었다. 반복해서 듣고 선생님이 단어와 문장을 알려주자 신기하게도 영어가 차츰 귀에 들어왔다.

 

교제를 보면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영어로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영어보다 한국말이 먼저 입 밖으로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영어로 말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학창시절에 영어를 열심히 배워두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매주 영어수업을 들었으나 기본지식이 부족하여 수업시간에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선생님에게 모르는 것은 자주 물어보았는데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수업 중에 마비된 손가락으로 책장을 더듬거리며 넘기기 어려워하는 것을 선생님이 보시고 옆자리에 앉은 목사님에게 따로 부탁을 하였다.

 

경식 씨가 몸이 불편한데 목사님이 옆에서 많이 좀 도와주세요!”

선뜻 도와달라고 부탁하기가 미안하여 말도 못 꺼냈는데 선생님이 먼저 말해주어 고마웠다. 선생님의 한마디 덕분에 수업을 들으며 목사님이 책장도 넘겨주고, 필기해 주어서 도움을 받았다.

 

가끔씩 수업 중에 집중력이 떨어지면 팝송을 배우고 불렀다. 수강생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익숙한 올드팝송을 선택하여 가사를 프린트하여 나눠주었다. 선생님이 가사를 해석하고, 신나게 노래도 불렀는데 수강생들 모두가 좋아하였다. 라디오에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팝송이 흘러나오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영어를 배우는 게 즐거웠고,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배워도 실력이 쑥쑥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처럼 정체되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자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게 된 사연을 나에게 들려주셨다. 10년 전에 자녀의 학업을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는데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기 쉽지 않았다. 선생님도 처음에 외국인과 대화를 하였는데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선생님이 영어를 사용해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발음과 현지에서 사용하는 영어발음이 달랐던 것이다.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가서도 간단한 영어를 사용했다. 집에만 있을 수가 없어 생존하려면 필수인 영어를 배우려고 문화센터에 등록하여 외국인과 만나서 영어를 사용하고 토론하며 자신감이 붙자 실력이 일취월장 늘었다.

 

실제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들려주었는데 내게 용기와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도 하루아침에 영어를 잘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여 지금의 실력을 이루어 내었던 것이다. 나도 선생님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영어를 잘할 수 있겠지 싶었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한동안 수업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과 수강생 모두 나의 안부가 궁금하여 연락이 왔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 같았는데 다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어 감사했다. 그 동안 강의를 듣지 못해 뒤처진 분량을 복사하여 주어서 도움이 되었다.

 

생활영어는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만족도가 높아 재수강하는 분들이 많았다. 분기마다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총성 없는 전쟁이다. 인터넷으로 70%, 방문접수를 30% 받는데 인터넷으로 접수 첫날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금방 마감된다. 매번 누나가 수강신청을 해주어 영어수업을 들었는데 한번은 바빠서 신청을 못해주었다. 할 수없이 내가 직접 수강신청을 하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이미 마감되어버렸다. 타이핑보조기를 착용하여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도 쉽지 않아 늦었던 것이다. 인터넷 접수를 못한 사람들은 새벽부터 평생교육원 정문 앞에 줄을 서서 수강신청하기 때문에 나는 재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어 방문접수를 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영어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없게 되자 선생님이 매우 안타까워하며 직접 원장님께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하였다. 대학교에 특별전형 입학이 있는 것처럼 평생교육원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 수강생을 위하여 사전에 접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를 한 것이다. 당장 선생님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런데 올해부터 갑자기 시스템이 바뀌었다. 일반인보다 장애인들이 먼저 수강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영어를 신청할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선생님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작년 연말에 선생님은 영어통역 자원봉사로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시상식에 참석한 시청 공무원에게 일반인과 달리 몸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은 수강신청을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두 배로 들어 힘들다면서 접근성과 편의성을 고려해서 사전에 수강신청을 받을 수 있게 작은 혜택을 주시기를 건의했다. 관계자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면서 얘기를 하였고, 마침내 변화를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도 우선적으로 수강신청을 할 수가 있어 다들 편리하다며 선생님을 칭찬했다.

  

평생교육원에서 영어를 배운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비록 나는 아직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예전보다 조금씩 알아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서툴게 표현할 수가 있다. 나도 선생님처럼 영어를 많이 배워서 영어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그날이 다가올 때까지 나의 영어 배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 선생님은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참사람이고 참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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