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소소하고 따뜻한 사람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0번째 편지 

소소하고 따뜻한 사람

 

글 : 박유강(참사람 독자)

 

 

월요일 아침, 여기저기 축 늘어진 사무실 의자들을 비집고 그 애가 발랄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하웃으며 들어선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 귀여운 웃음소리. ‘쟤는 월요병도 없나.’ 속으로 생각하며 비스듬히 그 애를 바라본다. ‘하긴, 나도 처음엔 밝았지. 뭐 초반엔 다 그렇지.’ 시선을 거두고 다시 무미건조하게 모니터를 응시한다. 한참을 서류와 씨름하다 문득 고개를 든다. 그 애는 공용프린트기 옆에서 가득 찬 파쇄기 함을 비우고 있다. ‘그래, 저런 일은 신입들이 알아서 미리미리 해야지.’ 생각하며 다시,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타자를 친다. 기획서에 실행방안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건너편 회의실에서는 분위기가 험악하다. 영업실적 달성 팀장회의에서 분위기가 좋았던 적이 없었지. 웬만하면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시계를 본다. ‘아직 이것밖에 안됐네. .’ 컴퓨터 전자파를 마셨다 뱉었다 하다 보니 숨이 점점 얕아진다. ‘이렇게 가슴이 턱턱 막히는 건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기지개를 작게 켜본다.

 

대리님, 이것 좀 드세요.” 그 애가 눈앞에 불쑥 사과즙을 내민다.

엄마가 시골에서 보내주셨어요.”

, 그래. 너 먹지. 고마워.

” “저 많이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호호 웃으며 뒤돌아 간다. 달콤한 사과즙이 시원하게 목구멍을 따라 가슴 밑으로 쑤욱 내려간다. 한결 편안해진다. 둘러보니 회의를 마친 팀장님들도 사과즙을 마시며 한 숨 돌리시는 모양이다.

 

나는 신입사원 환영회 때 그 애를 처음 보았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로 웃으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술은 잘 못 마신다고 손사래 치면서도 맥주를 받아들고 하하 웃었다. 공채로 입사한건 아니고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매니저로 승격된 거라고 했다. ‘그래? 일하면서 자격시험 통과하려고 나름 꽤 애썼겠구나.’ 생각했다. 다들 배불리 먹고 이리저리 취해서 떠드는 틈을 타 먼저 밖으로 나왔다. 열린 문으로 밤바람이 시원하게 부는데 그 애가 문 입구 신발장에서 회사사람들 신발을 다 꺼내고 있었다.

 

너 뭐해?” “선배님들 신발 꺼내드리고 있어요. 나갈 때 편하시라고요.” 호호 웃으며 계속 한다. “그럴 것까지…….” “대리님 구두는” “아냐, 내가 할게. 나 먼저 간다.” “, 조심히 가세요.” 속으로 저 애는 바보인가 싶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창문에 기대어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멀리 다리의 가로등이 반짝반짝 목걸이처럼 빛났다. 바보라니 우습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바보가 얼마나 많은데. 바보 추기경, 바보 대통령, ‘바보처럼 살기로 했다며 책을 내는 누군가, 바보처럼 그저 웃으라는 사람들. 그 애도 진짜 바보인걸까.

 

 

 

 

어느 날 팀장님들끼리 하시는 얘기를 들었다. 글쎄 그 애가 새로 오픈한 매장으로 발령받아 갔는데 그 건물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없더란다. 그래서 매일 그 쓰레기를 자기 집에 들고 가서 버렸다는 거다. 모두들 겉으로 놀라며 웃어넘겼지만 속으로 탄복하는 눈치였다. 정말로 그 얘기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잊혀 지지가 않는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도 그저 하하, 괜찮아요.”하고 웃었을 그 애 얼굴이 오버랩 된다.

 

며칠 후 현장점검을 나갔다. 마지막 순서로 그 애가 있는 매장을 둘러보고는 이제 마무리하고 다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하는데 그 애는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 가보니 CCTV를 한참 돌려보는 중이다. POS 마감을 하려고 시재를 맞춰보니 만원이 남았다고 한다. 일단 보관했다가 찾으러 오시면 드리라고 했더니 그래도 잘못 거슬러 드린 거니까 본인이 찾아서 꼭 돌려드려야 한단다. 할 수 없이 우리끼리 저녁을 먹고 왔는데, 퇴근시간이 훌쩍 넘도록 기어코 CCTV를 다 돌려보고는 결국 찾아서 돌려드렸다.

 

그 후로도 간간히 그 애의 미담이 사무실에 들려왔다. 여느 때처럼 사무실은 숨쉬기 답답하고 회의시간은 길어지고, 온종일 모니터만 응시하는 아무 날들이 흘러갔다. 넓고 삭막한 사무실 한편 회색 캐비닛 위에 그 애가 놓아둔 작은 선인장만이 초록빛을 낸다. 그리고 가끔 빨간 꽃도 피운다. 누군가가 물을 챙겨주진 않지만 꿋꿋이 잘 지낸다.

어느 날 소식을 듣자니 그 애는 다른 지방으로 전근 신청을 냈다고 한다. 후원하는 보육원에서 일손이 필요하게 되어 본인이 근처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나는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분명 여럿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무 삭막한 사람인 것만 같아서 억지로 이런저런 이유들을 생각해본다.

 

인생에 존경할만한 분이나 본받고 싶은 사람은 대단한 업적이 있거나 사회적 명성이 높아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초라해지지 않도록 심리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에 누군가를 존경하려고 했다. 그 분이 특별한 거라고, 보통은 나처럼 평범하게 산다고, 내가 그분처럼 하지 못하는 이유를 합리화하여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나보다 어린 후배의 일관된 모습은 나를 참 부끄럽게 하였고, 나는 그 앞에서 아무 핑계거리도 찾을 수 없었다. ‘착한 친구네, 순수한 친구야.’라는 식으로 가볍게 넘겨보려고 해도 그 애의 올곧음과 배려심은 내 안에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제야 인정하지만 사실, 비가 오는 날도 추운 겨울날에도 그 애의 곁은 늘 밝고 따뜻했다.

 

주말이 지나고 맑게 갠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꽃 화분을 몇 개 사들고 간다.

웬일이야 박대리?”하는 팀장님 목소리에 밝게 대답한다.

기분 좋게 일하시라고요. 환하고 좋지요?”

오랜만에 사무실에 웃음꽃이 핀다. 이 공간의 공기가 저만치까지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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