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지금의 꽃향기를 기억하세요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2번째 편지 

지금의 꽃향기를 기억하세요

 

글 : 서채빈(참사람 독자)

 

 

여고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남고 시절이라는 말은 없는데 왜 여고시절이라는 단어에만 무언가 아련하고 티 없이 맑은, 마냥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따라붙는 건지 늘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여고시절은 아침마다 어떻게 하면 학교에 안 갈 수 있을지, 어떤 말로 부모님께 자퇴를 설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문제아는 또 아니었던 게, 줄이지 않은 교복은 단정했고, 지각하는 일도 없었으며, 간혹 수업 시간에 졸기는 했어도 선생님을 앞에 두고 대놓고 엎드려 자는 대범함까진 없는, 그저 그런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의 내가 존재감이 없었던 것처럼, 내 인생에서 학교라는 곳도 존재 가치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여고는 잔인했다. 놀기를 좋아하는 쪽도,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쪽도 아니었던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선생님들한테도 그랬다. 꿈이 뭐냐고 묻는 말에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들 입장에선) 넋 나간 소릴 하는 나에게 진심 어린 상담을 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진학상담을 할 때에도 나를 맨 마지막으로 미뤄놓고 그대로 영영 내 차례를 불러주지 않은 담임교사도 있었다. 나에게 여고시절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어영부영 2학년이 됐을 때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고 했다. 과목은 윤리였다. 2 새 학기,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윤리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교실 앞쪽 나무 문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드르륵 열렸다. 아담한 체구의 짧게 깎은 백발, ‘윤리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인상의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K 선생님은 자상하게 자기소개를 하셨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를 졸업하시고, 원래는 학생들의 인적성 검사에 쓰이는 문항지를 만들고 연구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이 사업화되면서 언젠가부터 길거리에서 보이는 학생들이 전부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에 스스로 큰 충격을 받아 모든 일을 정리한 뒤 다시 공부해 선생님이 되셨다고 했다. 학생들이 가진 각각의 개성을 한 장의 종이 쪼가리로 규정지을 순 없으며, 학교라는 현장에서 직접 만나보며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갖고 있는지, 그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빛이 얼마나 귀한지 매일 깨닫게 된다며 앞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그러한 각자의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다른 과목 문제집을 펴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으셨고, 거울을 보지 말라거나, 조용히 하라고 야단치시는 법이 없었다. 엎드려 자는 친구 곁에 조용히 다가가서 어젯밤에 열심히 공부하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다며, 세수를 하고 오거나 아님 보건실에 가서 양호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20분 정도 낮잠을 제대로 자고 오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봐 주셨다. K 선생님은 그런 분이었다.

 

선생님은 담임을 맡은 반이 없었음에도 야자 시간을 활용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반을 개설해 늘 야근을 자처하셨다. 따뜻한 차와 예쁜 찻잔까지 준비된 공간에서 제각기 아이들이 내뱉는 진로 문제, 학교 문제, 가족문제나 우울함까지 모든 고민들을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답이 정해진 조언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나도 딱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나는 K 선생님께도 똑같이 넋 나간 소리를 꺼냈다.

 

가수가 되고 싶어요.”

 

K 선생님은 멋진 꿈을 가진 내가 부럽다고 하셨다. 내가 상담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필기하며 집중하는 모습을 봐오셨다며 학교 공부가 싫은 게 아니라, 더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 게 아니겠냐며 나를 남들과 다른 실패한 학생으로 치부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점이었다. K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신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특별히 어떤 조언을 해주진 않으셨다. 단지 내가 특별한 목적 없이 자퇴를 하고 학교를 벗어나 방황하지 않도록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셨다.

 

해당 모교는 교사끼리의 알력이 심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고통스러웠다. 학부모와 학생 편에 섰던 K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선생님들은 1년 뒤 인근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마지막인지 몰랐던 어느 수업 날, K 선생님이 화분을 들고 들어오셨다. 사람의 감각기관 중 후각이 가장 오래도록 기억을 간직한다고 하셨다. “여러분, 지금의 꽃향기를 기억하세요.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언젠가, 어딘가에서 이 꽃향기를 다시 맡게 되면 여러분은 오늘의 이 교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뜰에 핀 꽃향기도 맡아보고,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도 물끄러미 지켜보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을 느끼면서 예쁘고 좋은 것들로 여러분의 기억을 채워나가는 거예요. 그런 작은 기억들이 모여서 여러분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나에겐 여고시절이라는 말이 갖는 찬란함 같은 건 없지만, K 선생님의 말대로 나를 지탱해 줄 꽃향기와 구름과 햇빛을 많이 만들었다. 그 덕에 음악 공부도 했고, 이제는 의 인생을 살아가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아직도 나 자신에게 실패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들이 더러 있지만 그럴 때면 기분 좋은 꽃향기를 찾아 기억에 새로 담는다. 그렇게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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